▲ 버몬트 테니스장

미국의 서부는 로키산맥과 태평양 연안은 물론 알래스카와 하와이 주까지를 한데 묶어 일컫는 것이라서 미국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드넓다. 서부 안에서도 지역적 차이가 크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다양하기만 하다. 하지만 서부는 퍼시픽(태평양)과 마운튼(산악) 등 두 지역으로 크게 나눠 볼 수 있다. 태평양 지역은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주에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더한 5개 주고, 산악 지역은 애리조나, 뉴멕시코,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 와이오밍, 아이다호, 몬태나 등 8개 주니까 미 서부는 총 13개 주인 셈이다.

서부는 인종적 다양성도 높다.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주는 멕시코계 히스패닉 인구가 25%를 넘고, 특히 캘리포니아는 히스패닉이 38%, 아시아계가 15%인 데 비해 하와이는 아시아계가 40% 이상을 차지해 다른 지역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부의 전체 인구가 약 7,500만 명인데 이 가운데 3,900만 명이 캘리포니아 거주자다. 따라서 미 서부는 캘리포니아와 그 나머지 다른 주들로 갈라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로스앤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애틀, 피닉스, 라스베가스, 덴버 등 주요 도시별로 살펴보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들 도시와 도시들을 잇는 길을 따라 가볼까 한다. 먼저 LA와 그 주변을 살펴보자.

LA는 캘리포니아 최대의 도시이자 미국에서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LA 다운타운은 특별한 것이 별로 없고, 시청이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은 프리투어가 가능하지만 시간이 없다면 차창 관광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다운타운 동남쪽의 LA컨벤션센터와 스테이플스센터도 마찬가지다. 물론 NBA농구를 좋아한다면 물론 레이커스의 홈인 스테이플스센터에 가보고 싶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야구 다저스의 본거지인 다저 스타디엄은 다운타운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남가주대학(USC) 캠퍼스 안에 올림픽이 두 차례 열렸던 메모리얼 콜로세움이 있다. 같은 구내에 있는 LA자연사박물관도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 게티센터

▲ LA 다운타운

LA 다운타운을 둘러보는 데 오전 두어 시간으로 족하다면 게티센터는 오후 한나절을 꼬박 바칠 만하다. 이곳은 미 서부 최고 미술관의 하나로 반 고호의 <아이리스>와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 등 실물 그림을 감상하고 건축과 정원을 즐긴 다음 테라스에서 LA의 원경을 굽어볼 수 있어 1석3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입장료와 주차장에서 미술관까지 왕복하는 경전철은 완전 무료다. 대신 주차료가 15달러지만 인상파 등 근대회화를 전시하는 게티센터를 들른 당일 그리스 로마 조각 등을 전시하는 말리부의 게티빌라에 가면 주차료를 또 한 번 내지 않아도 된다. 주차료가 아까우면 아예 UCLA가 있는 웨스트우드에서 급행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주차장 바로 옆길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다운타운과 게티센터를 보고 난 다음 나머지 지역도 적어도 사흘은 더 잡아야 한다. 둘째 날은 할리우드와 비벌리힐스, 산타모니카를 보는 게 어떨까 싶다. 지난 9월 LA에 갔을 때 내게 라이드를 해준 딸에게 아침 10시에 할리우드와 하일랜드가 만나는 4거리에 떨궈달라고 부탁했다. 미국에 수 십 번을 갔지만 할리우드나 무비스타들의 손바닥을 찍은 워크오브페임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대로 상에 있는 할리우드 몰에 갔더니 중국인 관광객이 들끓었다. 그들은 몰 뒤쪽의 뷰포인트에서 할리우드 입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개최장소 코닥 시어터에선 그날 오후 예정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행사 때문에 도로를 차단하고 준비가 한창이었다. 내친 김에 선셋대로와 산타모니카대로를 지나 비벌리힐스까지 걸어가기로 작정했는데 막상 가보니 꽤 먼 길이었다.

가는 길에 남가주에만 있는 고급 수퍼체인 겔슨스마켓도 한번 들러보고 웨스트할리우드 도서관에도 머물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비벌리힐스는 15년 전에 와봤지만 도보로 걸어서 와보니 기분이 달랐다. 비벌리힐스 시청은 스탠포드대학 건물과 비슷한 스페인 콜로니얼 리바이벌 양식인데 돔 지붕을 도금까지 해서 부를 과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거리의 하나인 로데오 드라이브에는 명품점이 즐비하다. 절반쯤은 익히 아는 브랜드들이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한 군데도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윈도쇼핑만으로도 눈요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웨스트할리우드와 산타모니카를 갔다. 해안가에서 세 번째 블록인 3가 프로미나드에 가면 로데오 드라이브와는 분위기가 완연히 다른 쇼핑가가 나타난다. 훨씬 더 젊고 서민적인데다 활기에 차 있다. 금요일 저녁 산타모니카 피어(부두)에도 사람의 물결이 넘쳤다.

▲ LA 책방

셋째 날은 입장료가 없는 그리피스 천문대에 올라가 LA전경과 할리우드 간판, 저 멀리 태평양을 다시 한 번 굽어본 다음 패서디나로 넘어갈 차례다. 패서디나는 매년 초 대학풋볼 빅10과 팩10의 챔피언 두 팀이 겨루는 로즈볼 경기와 1890년 이래 매년 새해 첫날 벌어지는 로즈 퍼레이드로 유명하다. 패서디나는 LA와 남가주의 문화중심이라 할 수 있는 소도시고, 칼텍(Caltech)과 제트추진연구소, 아트센터칼리지, 풀러 신학교 등 명문교들이 많다. 칼텍 캠퍼스는 중심이나 상징이랄 것이 따로 없고 길거리에 대학 건물이 흩어진 채 듬성듬성 들어서 있지만 3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오후에는 100마일쯤 떨어진 팜스프링스로 가서 에어리얼트램웨이를 타볼 만하다. 2,595ｍ 높이의 산하신토 봉우리까지 2.5마일 거리를 12분30초 만에 올라가는 트램웨이는 요금이 25달러인데 회전식 케이블카로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카바존이나 데저트힐스 아울렛에서 쇼핑하기도 편리하다. 저녁은 코리아타운(K-Town)에서 먹고 한국식 커피숍에도 들러보면 어떨까.

넷째 날의 행선지는 자녀를 동반한 가족여행인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애들이 있다면 애너하임에 있는 디즈니랜드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괜찮다. 구경거리로 따지면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가 한 수 위다. 규모도 크고 나중에 지어서 시설도 덜 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이공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디즈니랜드는 역사탐방 차원에서라도 한번 가 볼만한 곳. 성인들만의 여행이라면 선택지가 더 다양하다. LA에서 당일여행을 다녀올 만한 목적지로는 샌디에이고와 산타바바라를 생각할 수 있다. 샌디에이고는 미국 서부 최남단의 도시로 날씨라면 세계에서 최고로 좋다고들 말하는 곳이다. 다운타운 개스등 구역의 길거리 구경이 샌디에이고 관광의 기본이라면 파드레스의 야구장 펫코파크 투어와 항공모함 미드웨이호 관람은 옵션이다.

샌디에이고에서 빼먹지 말고 가볼 곳은 코로나도 섬(반도)의 ‘호텔 델 코로나도’다. 웬만한 대도시는 모두 유서 깊은 최고급 호텔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지만 이 호텔은 건축미나 환경과의 조화도 출중하지만 역사와 내력이 특별해서 훗날의 추억을 위해 차 한 잔 하고 싶은 곳이다. 항구 건너편에 있는 포인트 로마 등대도 드라이브 코스로는 그만이다. 다음으로 가볼 만한 곳은 샌디에이고 동물원이다. 어느 대도시든 동물원이 있지만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투어버스를 타고 동물원을 돌아본 다음 곤돌라를 타고 하늘에서 입체적으로 동물들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만든 설계가 압권이다. 샌디에이고 시월드는 올랜도와 샌안토니오에 있는 자매시설과 함께 유명한 해양동물 놀이공원이다. 입장료가 90달러에 가까워 너무 비싼데다 대표상품인 범고래 쇼가 동물애호단체의 항의 때문에 조만간 폐지된다고 하니 관람객이 앞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샌디에이고 당일여행에서 하루를 더 잡아 1박2일 여행으로 다녀온다면 멕시코 국경을 넘어 티후아나에서 미국과는 사뭇 다른 이국적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티후아나에서 남쪽으로 약 70마일 더 내려가서 앤세나다 외곽에 바닷물이 주기적으로 용솟음치는 가이저(간헐천)를 보러 가는 사람도 많다.

산타바바라는 볼거리가 대단히 많은 곳은 아니다. 굳이 들자면 산타바바라 미션(천주교회)과 식물원 정도라 할까. 그러나 산타바바라는 과거 LA의 부자들이 놀러 다니거나 별장을 두는 곳이라 부티가 흘러 넘치는 도시였다. 최근엔 과거의 영화가 많이 퇴색한 느낌이지만 산타바바라 시내 중심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쇼핑거리다. 더욱이 LA에서 산타바바라까지 가는 1번 도로는 LA에서 샌디에이고로 가는 5번 고속도로보다 자연 풍광이 훨씬 더 아름답다. 산타바바라 여행에서 하루 정도 시간을 더 낼 수 있다면 1번 도로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또는 몬터리와 카멜바이더시(Carmel-by-the-Sea)까지만 가더라도 평생 기억에 남을 드라이브가 될 듯하다. 세계 곳곳에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가 무수히 많지만 LA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의 1번 도로, 특히 모로스베이-몬터리 123마일 코스는 최고의 경관도로라 자랑할 만하다.

▲ 모로스베이-몬터리 123마일 코스

이 코스의 백미는 빅 서(Big Sur)의 100마일 구간이다. 바위투성이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풍경에다 인적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태고의 자연이 온존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ㆍ주연한 1971년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의 도입부에서 라디오 디스크자키로 나오는 이스트우드가 컨버터블을 몰고 가는 절경의 도로가 바로 여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때 카멜 시장을 지낸 적이 있는데 지금도 부유층과 은퇴자의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몬터리는 이에 비해 훨씬 더 서민적인 도시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제목이자 몬터리의 해안가 도로명인 ‘캐너리 로우(Cannery Row)’는 원래 통조림공장 거리라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몬터리 제1의 관광가로 변신했다. 카멜과 몬터리 사이에 있는 페블비치 골프코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프장‘으로 손꼽히고 골프코스를 일주하는’17마일 드라이브‘는 골프 안 치는 사람에게 입장료를 받는 유일한 골프장이 아닌가 싶다. 이밖에 몬터리베이 수족관도 볼거리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