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서부(Midwest) 지도

미국의 미드웨스트를 중서부라고 옮기는데 한국으로 치자면 충청도와 비슷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수도권과 영호남 사이의 중간 위치에 있으면서 호남과 영남만큼 지역적 특색이 강하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일 게다. 미드웨스트 지역의 도시들은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등 코스모폴리탄적인 지역과 달리 평범하고 전형적인 미국 도시라고 여겨져 왔다. 미국 전체에서 가장 평균적이고 대표적인 도시로 1929년 인디애나 주의 소도시 먼시(Muncie)가 선정돼 사회학적 연구가 처음 이뤄진 것이 이런 인식의 출발점이었다.

지금도 미드웨스트 출신이라면 대서양?태평양 연안 대도시의 ‘뺀질이’도, 남부 태생의 ‘시골뜨기’도 아닌 밋밋하고 건실한 평균 미국인의 이미지가 강하다. 미드웨스트는 일리노이, 인디애나,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미네소타 등 ‘5대호 6개 주’와 미주리, 아이오와, 캔자스, 네브래스카,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등 ‘대평원 6개 주’를 합한 12개 주의 총칭이다. 미국 총인구 3억2,000만 명 가운데 약 6,600만 명 이상이 이 지역에 산다.

지리적으로 크게 보아 애팔래치아산맥 서쪽과 오대호 남쪽, 오하이오강 북쪽과 로키산맥 동쪽의 평평한 대초원을 아우르고 이 프레리 한가운데를 미시시피 강이 꿰뚫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계 미국인들이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오하이오강을 따라 서부로 진출했고 뒤이어 펜실베니아에 살던 독일계 이민자들이 대평원으로 진입했다. 콜럼버스 이전 대서양 해안에서 애팔래치아산맥까지가 끝없는 숲이었다면 오하이오 동부에서 캔자스 서부에 이르는 평원은 가없는 초지였다. 이처럼 평평한 지형이 이루어진 것은 빙하기에 최대 4㎞ 두께의 거대한 빙산이 밀고 내려와 모든 산과 습곡을 깎아버린 때문이다. 또 초원이 생긴 것은 로키산맥이 융기하면서 비구름을 가로막아 산맥 동쪽의 나무들이 말라 죽도록 했기 때문이다.

미국 중서부의 프레리는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와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와 함께 세계 3대 곡창의 하나지만 처음에는 개간과 경작이 거의 불가능했다. 무성히 자란 풀에 불을 지르기는 쉬웠지만 뒤이어 쟁기질을 하면 몇 발짝 못 가고 멈춰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평원지대의 비옥한 흑토가 너무 찰지고 끈끈해서 무쇠 쟁기에 들러붙는 바람에 진흙을 떼 내기 위해 한참을 허비해야 했다. 이 문제는 1837년 존 디어(John Deere)가 강철로 만든 보습과 자동세척식 쟁기를 발명함으로써 해결됐다. 대평원은 강우량에 따라 일리노이 등 동부의 키가 큰 풀 지역과 캔자스 등 중부의 중간키 풀 지역, 로키산맥 산록의 키 작은 풀 지역 등 세 가지로 나뉜다. 키 큰 풀은 지금의 옥수수 재배지대(콘 벨트), 중간키 풀은 밀 경작지대(휘트 벨트), 작은 키 풀은 목축지대로 고스란히 전환됐다.

▲ 세인트루이스 게이트웨이 아치

시카고는 오랜 동안 미국 제2의 도시이자 미드웨스트의 중심 도시로 군림했다. 월마트 이전에 한때 세계 제일의 백화점이었던 시어스 로벅은 원래 시카고에 본사를 둔 통신판매회사였다. 시카고에서 일리노이-미주리-캔자스로 이어지는 프레리에 사는 농민 가구에 옷가지와 생활용구, 가전제품을 우편으로 주문 받고 배달하기 위해 매해 1,000쪽이 넘는 카탈로그를 발행했다. 미국의 농가는 캐나다나 유럽처럼 집단으로 촌락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독립가옥으로 띄엄띄엄 살고 있기 때문에 통신판매가 제격이었다. 20세기 자동차의 보급과 함께 도시 교외의 쇼핑몰이 발달했지만 21세기 들어서는 아마존 등 온라인 판매가 다시 우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전통적 취락구조와 상관이 있다.

미드웨스트는 과거 노스웨스트라 불렸다. 오하이오 강의 북서쪽에 있는 지역 전체가 미국 독립 직후부터 15년간 노스웨스트 테리토리라 불렸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노스웨스트라고 하면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를 합한 옛날 오리건 테리토리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혼동의 소지가 있다. 델타항공에 합병돼 사라진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가 허브공항이어서 옛 이름 노스웨스트를 땄다. 시카고 교외 에번스턴에 있는 명문 노스웨스턴 대학도 이름의 연원이 같다. 미 NBA의 LA 레이커스가 호수가 많은 미니애폴리스에서 호수가 거의 없는 LA지역으로 옮겨왔지만 옛 이름을 지키는 바람에 그냥 레이커스가 된 것도 헷갈리기 쉬운 경우다. 비슷한 예로, LA 다저스의 다저스는 과거 브루클린에 홈구장이 있을 때 전차를 공짜로 타기 위해 표를 받는 차장을 이리저리 피하는 무임승차자 즉 다저스에서 딴 이름이 LA로 이전한 뒤에도 그대로 남은 것이다.

미드웨스트를 잘 이해하려면 시카고와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등 ‘기축 도시’를 가보는 것이 지름길이다. 시카고는 과거 ‘제2 도시’의 어깨띠를 벗고 미국의 세 번째 대도시로 내려섰다. 시카고 시내로만 한정하면 300만에 못 미치는 인구지만 이른바 ‘시카고랜드’라 불리는 도시권역 인구는 1,000만 명에 근접한다. 시카고를 잠깐 방문한 사람들은 미시간 호반의 아름다운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시카고에 미국에서 ‘마천루’라고 불린 고층건물이 처음 등장했고 지금은 윌리스타워로 이름을 바꾼 시어스타워가 1974~98년까지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군림했다. 1964년 완공된 쌍둥이 옥수수빌딩 마리나 타워는 60층에 불과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단골로 등장한 명품 건물이다.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출생지이면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20년 동안 살면서 설계한 주택이 수십 채 남아있다. 가수 냇 킹 콜의 노래로 알려진 ‘루트 66’의 시발점은 시카고의 도심가 ‘루프(Loop)’에 있다.

▲ 시카고 쌍둥이 옥수수 빌딩

시카고에서 절대 놓치지 말 곳은 아트인스티튜트미술관과 필드자연사박물관이다. 오바마가 로스쿨 교수를 지냈던 시카고대는 부호 록펠러가 세운 대학답게 고딕건축으로 유명한 구경거리이고 바로 옆의 과학기술박물관에는 캐나다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쳐 5대호까지 침투했다가 나포된 나치 독일의 U보트 실물이 전시돼 있다.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끝없는 옥수수밭과 콩밭이지만 일리노이 서북쪽 귀퉁이에는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의 고향 갈리나가 고색창연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는 미시시피 강 서쪽 기슭에 있는 서부 개척의 상징 ‘게이트웨이 아치’다. 높이 192ｍ의 스테인리스 아치인 이 기념탑은 세인트루이스 최고의 건물이기도 하다. 19세기에는 미시시피 강을 건너면 곧 서부였다.

게이트웨이 아치에서 370㎞ 서쪽으로 더 가면 트루먼 대통령의 고향 미주리 주 인디펜던스에 닿는다. 인디펜던스에서 미주리 강을 건너면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로 들어서는데 남쪽으로 가면 뉴멕시코 주 산타페가 종착점인 ‘산타페트레일’이고, 서쪽으로 가면 골드러시의 진원지로 직행하는 ‘캘리포니아트레일’인데 아이다호 주 포트홀에서 ‘오리건트레일’이 갈라졌다. 서부영화에서 보는 포장마차 행렬은 모두 이 3대 트레일을 따라 서부로 이주했다. 이들 세 도시 말고도 갈 곳은 많다. 위스콘신에 접어들면 유럽의 풍경처럼 낮은 언덕들이 구불구불 감돌고 있고 주도 매디슨은 미드웨스트에서 아마 가장 리버럴한 도시일 것이다. 미시간 주 서쪽의 골드코스트는 모래 해변과 서핑으로 유명하고 슈피리어 호 주변의 미네소타 주 바운더리워터스와 미시간 주의 어퍼페닌술라는 아웃도어 마니아에게는 최상의 캠핑장이다. 중서부의 명문대 ‘빅10’의 캠퍼스를 둘러보는 것도 아이비리그 순례에 못잖게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영화 ‘브레이크어웨이’를 본 사람에게 인디애나대가 있는 블루밍턴은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대형 콩 앞에 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