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남부 플로리다 반도의 끄트머리로부터 멕시코 걸프 쪽으로 길게 늘어선 징검다리 섬들이 있다. 이름하여 플로리다 키스(Florida Keys). 여기서 ‘키’란 말은 ‘열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원래 스페인어로 작은 산호도라는 뜻의 ‘cayo’가 ‘cay’로 바뀌고 다시 소리가 같은 ‘key’로 철자를 바꿔 쓰게 된 것이다. 얕은 바다에 산호초가 자라고 그 위에 모래가 덮여 나지막하고 평평한 섬들을 이렇게 부르는데 중국말로는 ‘초도(礁島)’라 하지만 우리말로는 ‘산호초’가 더 맞는 이름이다.

플로리다 키스는 모두 1,7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국립공원지역 70마일(110㎞)을 제외하고도 길이가 100마일(160㎞)에 이른다. 마이애미에서 남쪽으로 15마일(24㎞)쯤 내려가면 키라르고라는 섬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키웨스트(Key West)까지 97.6마일(156㎞)의 거리다. US 1번 국도의 이 구간은 시속 45마일로 속도 제한이 있어 차로 주파하는 데만 2시간 이상 걸린다. 모두 43개의 섬을 42개의 다리가 연결하고 있는데 가장 긴 다리는 ‘세븐 마일 브리지(11.2㎞).’ 1980년대 중반 이곳을 처음 갔을 때 바다 한가운데를 끝없이 달려가는 기분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았다. 단지 컨버터블(무개차)을 렌트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키웨스트는 미국의 ‘땅끝 마을’이다. 마이애미로부터 키웨스트까지 직선거리가 129마일(208㎞), 차로는 160마일(260㎞)인 데 비해 쿠바의 수도 아바나까지는 106마일(171㎞)에 불과하다. 흑산도에서 중국 샨둥반도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처럼 가깝지는 않지만 키웨스트에 가보면 쿠바가 지척이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뒷날 아바나에 갔을 때도 키웨스트는 바다 건너 바로 저기라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쿠바 난민들이 허술한 쪽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갈 엄두를 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장거리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는 2013년 8월 아바나에서 키웨스트까지 180㎞를 53시간 만에 헤엄쳐 건넜다. 이전에도 이 구간을 수영한 사람은 있었지만 상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케이지 없이 건넌 것은 처음이었다. 케이지 안에 수영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피곤할 때 잠시 창살을 잡고 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무엇보다 나이애드가 만 63살 나이의 여자였다는 점이 대단하다는 찬사를 이끌어 냈다. 35년 전 첫 번째 횡단 시도를 한 이후 5차례 도전 끝에 거둔 성공이었다.

마라톤 수영은 10㎞ 이상의 장거리 오픈코스를 헤엄치는 것이다. 이른바 ‘오션즈 세븐(Ocean’s seven)’은 (1)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노스 채널 (2)뉴질랜드 북섬과 남섬의 쿡 스트레이트 (3)하와이의 몰로카이 채널 (4)캘리포니아의 카탈리나 채널 (5)일본의 쓰가루 해협 (7)지브랄타해협을 통틀어 일컫는 것인데 2012년 아일랜드 출신 스티브 레드몬드가 7개 해협을 모두 헤엄쳐 건넌 첫 완영자가 됐다.

차를 타고 해상고속도로(Overseas Highway)를 건너 키웨스트 타운을 들어서면 별로 크지 않으면서 고색창연한 휴양도시를 만나게 된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는 비행장에 가까워서 비행기 소리가 다 들렸다. 건너편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더니 다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웨스트 자체는 특별할 것이 별로 없고 다만 오래 전부터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로부터 추위를 피해 겨울을 나는 피한도시로 알려졌기 때문에 명사들이 살았거나 머물던 집이 많다.

미국 북부나 캐나다에서 여름에는 자기 동네에 살다가 겨울에만 따뜻한 곳으로 옮아가서 한 철을 지내는 사람들을 ‘스노우버드(Snowbird)’라 부른다. 겨울 추위가 무서운 노인층이 대부분인데 1940년부터 열여섯 번의 겨울을 키웨스트에 났다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 원조 눈새가 아닌가 싶다. 프로스트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시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왔던 <유리동물원>을 쓴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는 1941년 키웨스트를 방문했다가 맘에 든 나머지 1949년부터 1983년 죽을 때까지 아예 눌러앉아 소박한 단독주택에 살았다. 트루먼 미 대통령도 이곳을 11번이나 찾아와 미 해군 비행장 안 ‘키웨스트 소백악관’에서 도합 175일이나 머물렀다. 우리나라 진해 앞바다 저도의 대통령별장은 키웨스트 소백악관을 본뜬 것처럼 여겨진다. 해군 비행장은 부두와 반대쪽 본토쪽 방향에 자리 잡고 있는데 태프트 대통령이 처음 방문한 이래 1차 대전 중에는 토머스 에디슨이 이 건물에 6개월 동안 묵으면서 무기개발에 종사하기도 했다.

▲ 헤밍웨이 집

키웨스트 주민 가운데 가장 유명인사는 역시 어니스트 헤밍웨이라 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일생동안 네 번 결혼했는데 두 번째 아내 폴린 파이퍼와 1928년부터 1939년까지 키웨스트에 살면서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를 집필했다. 폴린은 여성잡지 기자였고 부잣집 딸이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헤밍웨이 하우스는 처삼촌이 사준 것이다. 1930년대 내내 그는 겨울에는 키웨스트에서, 여름에는 몬태나에서 사냥을 하면서 지냈다. 헤밍웨이가 네 번째 아내가 될 저명한 저널리스트 마사 겔혼을 만난 것도 1936년 키웨스트였다. 그들은 스페인 내전 취재를 위해 스페인에서 합류했고, 헤밍웨이는 1939년 폴린과 헤어지는 방편으로 쿠바로 도망갔다.

우리나라에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인지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편인데 나는 키웨스트에서 살던 문학가 가운데 셸 실버스틴(Shell Silverstein)을 더 선호한다. 시인이자 작사가, 만화가, 시나리오작가, 아동문학가였던 그는 ‘셸비 아저씨’라고 자칭하기도 했는데 한국전 말기 한국에서 근무했던 참전용사다. 실버스틴은 미국 어린이라면 대부분이 아는 작가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보도가 끝나는 곳><잃어버린 반쪽> <다락방의 불빛> 등 동시가 특히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부터 1999년 죽을 때까지 키웨스트에 살았다. 이밖에 미국의 저명한 아동문학가 주디 블룸(Judy Bloom)도 세 번째 남편과 함께 현재 키웨스트에 살고 있다.

키웨스트에 유난히 저명인사가 많이 살았던 것은 마이애미 이남이 미국에서 열대기후를 가진 유일한 곳이고 키웨스트는 특히 바다와 해변, 휴양지와 교통 편의를 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유명한 휴양지는 거의 모두 철도회사나 부동산개발업자에 의해 조성됐다. 키웨스트가 19세기 처음 개발된 것도 지역 유지들이 해군기지를 유치하기 위한 로비를 벌인 것이 주효한 까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 주민 일부가 강경 반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 등지에서는 군 기지가 들어서면 지역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플로리다에서 키웨스트와 비슷하게 고급 휴양지로 개발된 곳으로 키비스케인(Key Biscayne)이 있다. 키비스케인은 마이애미 바로 남쪽에 있는 섬으로 여기서부터 플로리다 배리어 아일랜드(Barrier islands)가 시작된다. 배리어 아일랜드는 본토와 평행해서 외해를 가로막는 섬들이 사슬처럼 이어진 것을 말하는데 미국의 경우 주로 대서양 해안에 분포돼 있고 텍사스 등 멕시코 걸프 쪽에서도 일부 나타난다. 플로리다의 경우 키비스케인은 마이애미에서 전장 8.7㎞의 리켄배커 둑길(Rickenbacker causeway)로 연결돼 있다. 이 둑길 역시 비스케인 섬의 소유주가 로비한 끝에 1947년 건설된 것이다.

키비스케인은 키웨스트보다 규모가 작고 시기적으로 후에 조성된 휴양도시다.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 되기 전에 맨 처음 콘도를 구입한 입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휴가를 자주 이곳에서 보내 플로리다 백악관으로 불렸다. 키비스케인은 키웨스트보다 건축이 새롭고, 전체적으로 샌디에이고의 코로나도 섬(Coronado Island)와 비슷한 분위기의 고급 휴양지라 생각하면 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한때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으로 있었던 페블비치 골프장 주변의 카멜(Carmel-By-the-Sea)이 이런 범주에 속하는 휴양도시다.

플로리다는 흔히 ‘은퇴자의 천국’으로 알려졌지만 데이토나비치-올랜도-탬파를 잇는 4번 고속도로(I-4) 회랑지대를 경계로 해서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북부 플로리다는 미국 남부의 연장이고 농업이 최대 산업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다. 올랜도는 디즈니월드를 비롯해 유니버설 스투디오, 부시가든, 씨월드 등 놀이공원들이 집결해 있는 곳이고 업소간 경쟁 덕분에 미국에서도 호텔·모텔 숙박료가 가장 싼 곳이다. 과거에는 마이애미와 마이애미비치 등 도시가 주요 관광지였다면 근래에는 올랜도와 탬파 등이 주요 행선지가 되고 있다. 올랜도 정 동쪽에 있는 케이프 케너베럴은 로켓 발사기지와 통제소, 우주인 명예의 전당 등이 있는 케네디우주센터의 입지다.

플로리다에는 24개 군 기지시설이 있는데 탬파에는 미 중부군사령부와 특전사령부가 있고, 마이애미 교외에는 남부군사령부가 있다. 미군은 전 세계를 관할지역으로 나눠 사령부를 두고 있는데 중부군사령부는 중동 및 중앙아시아 전역, 남부군사령부는 중미와 남미, 카리브해지역을 맡고 있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에는 현지 사령부가 있지만 원래는 모두 중부군사령부 사령부 소관이다. 걸프전 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라크 침공작전을 지휘했던 슈와츠코프 대장도 중부군사령관이었다.

미국 노인들이 플로리다로 이주하는 이유는 첫째, 따뜻한 날씨 때문이지만 둘째, 집값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셋째, 주 소득세가 없다는 점이 고려 대상이다. 마이애미시내는 쿠바난민 등 히스패닉 거주자가 워낙 많아 은퇴자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교외지역과 마이애미비치 등은 인기가 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NBC에서 방송된 시트콤 <골든걸스(The Golden Girls)>는 60대 과부 및 이혼녀 3명과 80세 노모의 동거생활을 코믹하게 풀어내 큰 인기를 모았다. 그때까지 노년을 ‘실버 에이지’라고 표현하던 것을 ‘골든 에이지’라고 바꾸는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이애미와 포트로더데일은 크루즈선이 발착하는 중심지다. 마이애미 교외에 본부가 있는 카니발 크루즈선사 하나만도 연 매출이 150억 달러(2014년)가 넘고 종업원 수가 9만1,000명인 거대산업이다. 플로리다 날씨는 북부가 아열대다습기후라면 남부는 열대몬순기후다. 개인적으로 6월에 차를 몰고 가는데 포트로더데일와 마이애미 경계의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가니 후끈한 열기를 처음 느끼기도 했다. 플로리다를 포함한 미국 남부는 에어컨디셔너가 발명된 이후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 남부는 겨울엔 좋지만 여름엔 견디기 어려운 곳이었다. 플로리다는 상대적으로 생활비가 낮고 일자리가 풍부한 점이 인구 흡인요인이 되고 있다.

플로리다는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다. 뉴요크는 네 번째로 밀려났다 2010년 센서스까지는 뉴요크가 3위, 플로리다가 4위였는데 지난 몇해 사이에 순위가 뒤집힌 것이다. 남부 플로리다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경향이 있다. 마이애미비치는 한때 미국 유대인 부호들이 은퇴 후에 몰려 사는 곳이었는데 최근에는 다른 곳으로 분산되는 추세라고 한다. 해마다 대학의 봄방학 때는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와일드파티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포트로더데일이 인기였지만 현지 주민들이 대학생들의 과잉행동에 반발해 각종 제한을 강화하자 최근에는 마이애미비치와 칸쿤, 텍사스의 파드레아일랜드 등지로 행선지가 바뀌고 있다.

플로리다에는 악어가 명물이다. 특히 마이애미에서 걸프 연안의 네이플스를 잇는 에버글레이즈 파크웨이는 ‘악어골목(Alligator Alley)’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플로리다대 풋볼팀 이름이 게이터스(Gators)일 정도로 앨리게이터가 많다. 그런데 크로커다일과 앨리케이터의 차이점을 아시는 분? 체구도 차이가 나고 부리의 모양, 몸 색깔도 약간 다르지만 가장 쉽게 말하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이빨이 보이면 크로커다일, 안 보이면 앨리게이터다. 플로리다에는 앨리게이터가 주류지만 나일강에 산다는 크로커다일도 일부 있다. 또 캘리포니아 오렌지와 플로리다 오렌지의 차이는? 캘리포니아 네이블오렌지는 주로 생식용이지만 플로리다 오렌지는 94%가 주스용이다. 그래서 플로리다산 자몽(Grapefruits)은 흔히 볼 수 있어도 플로리다산 오렌지는 식품점 선반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