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터사와의 후원 계약을 맺은 배드민턴협회 대표선수와 박기현 회장

빅터사와의 인연은 이렇다. 2000년대 초 지방 실업배드민턴연맹 대회 취재갔다가 몇몇 여자 선수들이 셔틀콕 품질이 나쁘다는 불평을 해 신문에 기자수첩을 쓴 적이 있다. 빅터사 제품이다. 스매시를 해도 결정이 안되고 셔틀콕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용품이야 품질의 차이도 있지만 실업연맹은 당시 대세인 요넥스 셔틀콕 대신 빅터사 제품을 사용했다. 업계 균형 발전을 위한 배드민턴 임원들의 마인드였다.

그 기사가 나가자 빅터사에서 연락이 왔다. 빼줄 수 없냐며. 그 이후는 어떻게 됐는 지 모르겠다. 기자의 손에서 기사가 떠났기 때문에 그 기사는 데스크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2월 28일 빅터사가 대한배드민턴협회와 거액 후원 계약을 맺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경쟁사인 요넥스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기자 추산으로 4년 280억원. 주니어 대표팀부터 국가대표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빅터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전세계 대회를 누비는 조건이다.

배드민턴은 테니스보다 국제적인 스포츠는 아니다. 매주 대회가 열리는 것도 아니고 전세계 어느 나라나 배드민턴 대회에 출전 시키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이래봐야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한국 정도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많이 퍼졌다. 그럼에도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잭팟을 터뜨렸다.

대한테니스협회 예산이 박박 긁어 모아 총 50억원인데 배드민턴협회는 후원만 연간 50억이 넘는다.

왜 그럴까.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은 재벌 총수인가. 아니다. 대학교수출신이다. 대한배드민턴협회 박기현 회장은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체육인 출신이다. 박 회장은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2001 – 2016.3), 한국체육대학교 교수(1983 – 2012), 대한체육회 이사(2005 – 2009),한국체육대학교 교육대학원장(2008 – 2009), 한국대학배드민턴연맹 회장(2009 – 2012)을 지냈다. 그동안 배드민턴협회는 신계륜 국회의원을 회장으로 모시기도 하고 삼성전기나 대교의 힘을 빌어 협회를 운영하기도 했다.

대교의 강영중 회장은 외국나가 있는 선수들 스코어 보느라 밤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아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번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강 회장은 세계배드민턴연맹 회장도 지냈다. 그런 분이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좌지우지 하지 못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그런 곳이다.

빅터사는 대만 브랜드이고 지금은 중국 자본이 개입되어 운영되는 회사다. 한국 빅터사(서윤형 회장, 한종희 사장)는 중국 지원을 받아 대한배드민턴협회와 계약을 맺었다.

▲ 배드민턴협회 홈페이지. 국제대회와 국제랭킹이 우선이고 배드민턴 방송을 걸어놓고 있다

아래는 조인식을 취재한 한겨레 김경무 선임기자의 기사다.

대한체육회 산하 가맹단체는 현재 59개에 이른다. 준가맹단체 5개, 인정단체 4개까지 합치면 총 68개나 된다. 그러나 이들 단체 가운데 나이키 같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나 거대 용품업체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탄탄하게 단체 살림을 꾸려가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한배드민턴협회가 28일 다시 한번 초대형 후원 계약을 맺어 다른 경기단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협회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파크텔 2층 런던홀에서 대만의 글로벌 배드민턴 용품 브랜드인 빅터와 4년 동안 현금과 용품을 포함해 280억원 규모의 후원 계약을 했다. 정확한 계약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게 추산된다. 2012년 1월 초 나이키와 8년 동안 1200억원(현금 600억원, 물품 600억원)에 국가대표 후원 계약을 맺은 대한축구협회 다음으로 큰 규모다.

이날 후원 조인식 자리에는 대만에 본사를 둔 글로벌 빅터의 천덩리 회장을 비롯해 천위후이팡 부회장, 대만 빅터의 천수룽 사장, 그리고 한국 빅터의 서윤영 회장, 김경희 부회장, 한종희 사장 등이 총출동해 한국 배드민턴 국가대표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특히 부인까지 동반한 고령의 천던리 회장은 이날 참석한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을 향해 “한국 대표팀과 글로벌 빅터가 추구하는 ‘세계 최고’, ‘세계 최강’을 위해 더욱 열심히 뛰어줄 것을 부탁한다”면서 강경진 대표팀 감독과 남자복식 간판스타 유연성에게 그 나라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붉은색 봉투에 담은 포상금까지 전달했다.

빅터는 4년 전인 2013년에도 공개입찰을 통해 일본 브랜드인 요넥스를 제치고 배드민턴 국가대표 공식 후원사로 선정됐다. 이번 후원액은 당시보다 다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후원 협약에 따라 빅터는 3월1일부터 2021년 2월28일까지 국가대표 선수단과 대한배드민턴협회 각종 수행사업을 후원하게 됐다. 현재 국내 배드민턴 용품 시장은 요넥스가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데, 빅터는 2009년부터 당시 이용대가 뛰던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 후원으로 요넥스의 아성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해 국가대표 선수들의 국제경기 출전 비용만으로도 26억~27억원 정도를 쓰고 있다고 한다. 협회는 또 최근에는 인천공항공사로부터 6억원을 후원받기로 하고, 동호인 대회도 겸하는 ‘코리안리그’를 창설하기로 결정해 오는 5월 첫 대회를 열 예정이다. 경기인들 사이의 파벌 다툼에다 집행부의 무능력으로 스폰서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휘청대고 있는 다른 경기단체들에 대한배드민턴협회는 발전을 위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 배드민턴 선수들 국제랭킹. 여자주니어 유망주가 배드민턴도 부족하다

배드민턴협회가 이처럼 대박 계약을 맺게 된 것은 조직의 힘이다. 몇가지 이유를 간추렸다.

1. 주니어부터 성인까지 국제대회를 모두 협회 비용으로 내보낸다. 이를 위해 빅터사로 받은 후원금 중 연간 26억원을 사용한다. 테니스가 개인적으로 혹은 개인 후원으로 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인들이 국제대회 상금을 받으면 협회에 주니어 발전기금의 일부를 떼고 가져간다. 주니어부터 협회 지원받아 성장해 성인이 되어 받은 상금은 다시 주니어에 쓰여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2. 일찌감치 국제화에 눈을 떴다. 배드민턴협회 주니어 상비군과 대표선수는 연간 30여회 이상의 국제대회에 대거 출전한다. 단체전이 많고 개인 단식과 복식에 출전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배드민턴 선수들은 국제무대의 벽이 높지 않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하면 대진표 나오자 마자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종목이 배드민턴이다. 그만큼 국제대회 많이 나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테니스와 달리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종목이 배드민턴이다.

3. 국제화의 결과는 남녀 선수들의 랭킹으로 나타난다. 100위안에 수두룩하고 50위, 10위안에 여럿있는 종목이 배드민턴이다. 이용대 라는 선수는 화순초등학교때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후원받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성장했다. 협회와 삼성전기가 만들어낸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배드민턴은 테니스와 달리 대표선수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히고 들게 할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테니스는 라켓 다르고 신발 다르고 연습복 브랜드 달라서 어렵지만 배드민턴은 일사분란하다. 그래서 스폰서들이 국제대회 나가 성적내고 자사 브랜드 다 들고, 가방까지 메고 다니는 선수들이 마케팅적으로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생활체육 배드민턴 시장이 큰 것도 빅터사의 큰 계약 배경이기도 하다.

5. 협회 직원의 전문성이 협회를 키우고 있다. 회장이 수차례 바뀌어도 협회내 직원들이 전문성을 갖추고 일을 해왔다. 심지어 사표내고 외국 살러간 직원이 다시 돌아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다.

6. 배드민턴 대회의 국내 유치는 모두 협회를 통해 이뤄진다. 연맹체가 각자 딴살림차리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지자체장 만나 직접 교섭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대회는 협회를 통해 이뤄진다. 협회에서 지역균형발전과 선수를 위한 대회 유치를 한다.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초등연맹전 같은 경우 3년 장기계약으로 지자체와 사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대한테니스협회도 아디다스 같은 굵직한 스폰서와 '잭팟'계약을 하려면 주니어부터 국제화에 포커싱을 맞춰주고 매주 성적이 나오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주니어들이 개인돈 들여 외국가고 개인코치 기용해 외국 나가는 일을 협회가 해주어야 한다.  상비군 선발해 국제대회 내보내 국위선양시키고 국제경쟁력 갖추게 되면 협회에 큰 스폰서를 연결시키는 명분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 공정한 선발과 체계적 훈련, 연맹이 각개전투식으로 하는 대회 유치의 협회로의 창구 단일화, 협회의 타이틀 스폰서 유치가 이뤄져야 한다.

참고로 배드민턴협회는 신체조건 좋은 중국 벽에 막혀 번번이 결승에서 패하자  아예 중국 국가대표 코치를 스카우트해 태능선수촌에 상주시켜 만리장성을 허물 비책을 강구했다.  축구가 히딩크 통해 해외파가 대량 생산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구글 검색창에 영어로 'tennis'라는 단어를 치면 수억건의 정보가 나오지만 한글로 '테니스'를 구글 검색하면 수만건에 불과하다.  협회나 선수나 지도자나 우물안 개구리로는 한계가 있다.   

▲ 배드민턴협회 대회 일정. 국제대회 출전이 한달에 두서너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