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통산 처음으로 투어대회 복식 준결승전에 진출했던 정현이 결승에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투어대회 본선에서 5일을 ‘생존’ 한 경험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리 베셀리(체코)와 짝을 이룬 정현은 27일(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ATP 500시리즈 두바이오픈 복식 4강전에서 펠리시아노 로페즈-마크 로페즈(이상 스페인) 조에게 6-4 7-6<6>으로 패했다.

이날 경기는 예상보다 한 시간 가량 늦은 오후 10시(현지시각)에 시작됐다. 정현의 경기에 앞서 열린 단식 4강전이 2시간의 접전으로 펼쳐진 데다, 이 경기에 나섰던 펠리시아노 로페즈에게 충분한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정현의 경기를 앞둔 센터코트는 고요하기만 했다. 방금 전까지 마르코스 바그다티스(사이프러스)의 역동적인 플레이에 매료돼 “마코스” 를 연호하던 관중들은 경기가 끝나자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텅 빈 관중석에서는 마치 모든 경기가 끝난 듯이 청소부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단지 전광판만이 다음 경기가 열릴 예정임을 외로이 알리고 있었다.

이날 경기의 변수는 펠리시아노 로페즈가 얼마나 평정심을 되찾느냐에 달려 있었다. 단식 4강전에서 1세트를 6-3으로 가볍게 따낸 로페즈는 2세트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반격을 시작한 바그다티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아웃된 공을 라인 엄파이어 쪽으로 날리며 판정에 간접적으로 항의하는가 하면, 네트에 대고 볼을 ‘패대기’ 치며 분을 삭히지 못했다.

하지만 투어 20년차의 백전노장 로페즈는 복식 경기에서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체력이 고갈된 줄 알았던 그는 네트 앞에서 강력한 발리를 꽂으며 상대를 위협했다. 서브와 발리 모두 무결점 플레이로 1세트를 6-4로 가져왔다.

정현-베셀리 조는 8강전과 달리 서브게임을 쉽게 지켜내지 못했다. 대신 서브가 약한 마크 로페즈의 서브게임을 빼앗으며 균형을 맞춰나갔다. 정현은 날카로운 백핸드 크로스로 스트로크 싸움에서 우위를 지켰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치던 양 팀은 2세트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했다. 초반에는 베셀리의 활약으로 5-1까지 달아났다. 하지만 이후 펠리시아노 로페즈가 발리를 연거푸 성공시켜 점수차를 순식간에 좁혔다. 결국은 6-5로 앞서던 베셀리가 연속 3개의 발리 에러를 범하며 6-8로 역전패를 당했다.

고요함 속에 시작됐던 경기는 열기가 뜨거워지자 관중들의 탄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정현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테니스팬들도 정현을 통해 복식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두바이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