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롤랑가로스에서 우리 주니어들이 게임을 치르고 있다. 승리를 갈구하며 코트에 들어서지만 매번 의기양양해서 나올 수는 없다. 오늘 오찬영(동래고 2)은 칠레의 마르셀로 토마스 바리오스 베라에게 세트 스코어 0대2(2-6 2-6)로 1시간 2분만에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주니어 10번시드인 바리오스와 오찬영의 경기는 신체적인 조건도, 수 싸움에서도 절대적으로 바리오스가 우위였다. 나이도 바리오스가 한 살 더 먹었다. 게임 스코어와 게임 시간에서 말 해주듯 전반적으로 바리오스가 공격적으로 게임을 이끌어 갔다. 오찬영은 1세트 0대3으로 지고 있다가 바리오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함으로써 “러브”게임을 벗어났다. 그리고 1대5에서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킨 것을 전부로 2세트에 들어섰다. 1 오찬영의 서브로 시작된 2세트에서는 마음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세트에서 바리오스의 공격에 수비적으로 대응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라 생각 했기 때문이다. 과감한 공격은 자신의 게임을 지키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두 번째, 세 번째의 자신의 서브 게임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1대5에서 자신의 서브 게임을 3번의 듀스 끝에 지킨 것이 오찬영이 획득한 게임의 전부였다.

 

 그러나, 게임 내용이 이렇다 해서 오찬영이 못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오찬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바리오스의 수가 오찬영의 수에 비해 너무 높았다. 바리오스의 샷은 오찬영의 샷보다 베이스라인 가까이, 사이드라인 가까이 떨어졌다. 반면 오찬영의 볼은 상대적으로 짧았고 중앙으로 몰렸다. 공격적인 선수가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목적지에 볼이 꽂히는 경우에 흔히 볼 수 있는 게임 양상이다. 바리오스는 베이스라인과 사이드라인 가까이 강력하게 볼을 보내 놓고 네트 플레이로 들어왔다. 오찬영이 베이스라인 뒤에서 스트로크 대결을 준비하면 여지 없이 드롭샷을 놓았다. 바리오스가 획득한 포인트의 반 수가 네트 플레이와 드롭샷이라 느껴질 정도로 바리오스는 시의 적절하게 코트에 자신만의 수를 놓고 있었다. 2세트 중반을 넘어서며 바리오스의 강력하고 깊숙한 볼을 오찬영은 패싱샷 시도 대신 로브로 올리며 전환을 시도 했다. 깊숙하게 볼을 찔러 놓고 네트 플레이로 달려드는 바리오스에게 그 시도는 매우 유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게임은 거의 기울어진 상태였다. 조금 더 빠른 시간에 그 시도를 했으면 더 좋은 게임 내용이 되었을게다. 오찬영은 오늘 게임이 전반적으로 어땠느냐는 질문에 "상대편에 대해 알지 못해 초반 많이 끌려 다녔다. 상대편의 볼이 깊고 내 볼은 상대적으로 짧았던 것 같다. 이 게임을 배움의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 바리오스가 드롭샷을 놓고 있다. 이 샷은 네트를 살짝 넘어 위닝 포인트가 됐다

 

 오찬영의 나이 올해 16살이다. 그는 윔블던이 끝날 때까지 투어링팀에서 지도를 받는다고 한다. “투어링팀에는 남자7명, 여자5명이 있습니다. 코치는 3명이구요. 그들은 매 순간 저에게 맞는 코칭을 해줍니다. 아주 세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투어링 팀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이냐고 게임이 끝나고 물었더니 오찬영이 이같이 답했다. 

 

 앙투카의 흙을 날리며 코트에서 땀 흘리고 있는 우리나라 주니어들에게 있어 지금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순간이다. “실력은 억누르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소통하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훈련을 하면 청소년의 에너지를 그대로 유지하며 성인으로 갈 수 있다”고 정신의학 교수인 대니얼 J. 시겔은 말했다. 조금은 내성적인 성향을 가진듯한 오찬영에게 오늘의 경기는 꽤 많은 생각을 안겨 줬을 것이고 커다란 경험이 되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코트에 들어서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주니어 선수에게 있어 이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경기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코치의 지도를 비롯 스스로도 배우는 노력을 통해 지식과 기량을 높히고 실전을 통해 이기고 지면서 하나씩 하나씩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상대편을 이기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오찬영을 비롯 우리나라 주니어의 진짜 무대는 이곳 조그마한 야외 코트가 아니라 1만5천여석의 필립 샤트리에 코트여야 하고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상처가 많을수록 멋진 나이테 문양을 만들고,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 진다.

 

▲ 오찬영이 바리오스의 짧은 볼을 높은 타점에서 잡아 치려고 하고 있다. 이 샷은 멋진 위닝 포인트가 됐다

 

▲ 바리오스는 자신의 좋은 샷이 나올 때마다 주먹을 쥐고 화이팅을 외쳤다. 세레나 윌리엄스는 상대편과 기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좋은 샷을 치면 악을 바락 바락 쓰며 상대방을 쏘아봤다. 결국 자신이 지고 있던 게임도 역전 시켜 8강에 진출했다

 

▲ 오찬영이 바리오스의 드롭샷을 달려가 받아 넘기고 있다. 이 볼은 네트를 넘어 갔으나 다시 바리오스가 잡았고 바리오스의 포인트가 됐다

 

▲ 바리오스가 네트 플레이를 하고 있다. 바리오스는 볼을 길게 보내 놓고 네트로 대시해 들어와 발리 플레이로 끝을 냈다. 종종 라켓 손잡이를 짧게 잡았다. 라켓을 짧게 잡으면 컨트롤이 좋아지나 세계적인 선수 중 플레이 중에 라켓 그립을 짧게 잡는 선수는 없다

 

▲ 바리오스와 오찬영이 네트 플레이 중 바리오스가 친 볼이 오찬영의 몸(기자는 몸에 맞은 것으로 봤으나 라켓에 맞았을 수도)에 맞고 날아가고 있다(사진 우측 상단. 바리오스가 오찬영은 바라 보지도 않고 팔만 뻗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고 있다

 

▲ 오찬영의 서브

 

▲ 바리오스는 베이스라인 깊숙이, 사이드라인 가까이 볼을 보냈다. 오찬영은 그 볼을 간신히 따라가 패싱샷을 시도하려 했으나 키 큰 바리오스에게 발리로 번번이 막혔다. 그러자 2세트에는 그 볼을 높은 로브로 띄웠다. 바리오스가 로브 볼을 베이스라인 뒤 벽까지 따라가 받아 넘기고 있다

 

▲ 2세트 바리오스가 게임 스코어는 앞서갔으나 팽팽하게 듀스게임이 이어졌다. 칠레 코치들이 바리오스가 포인트를 따자 주먹을 불끈 쥐며 힘을 붇돋워 주고 있다. 그들은 바리오스의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샷 중간 중간 바리오스의 샷에 대해 이야기 했다.

 

▲ 바리오스에게는 그를 지켜봐 주고 응원하는 코치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찬영은 매치가 시작할 때 그를 응원하는 한국인은 없었다. 매치 시작 잠시 후 대한테니스협회 주원홍 회장을 비롯 몇 몇이서 관중석에 앉았지만 1세트가 2-6으로 끝나자 자리를 떴다. 아마도 14번 코트에서 뛰고 있는 홍성찬 선수에게 갔을 것이라 짐작된다. 오찬영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ITF로고와 이니셜이 찍혀있는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의 시선은 오찬영의 움직임과 샷을 따라가고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오찬영의 샷을 담았고, 오찬영의 샷에 대해 서로 대화를 했다. 그들은 오찬영을 응원하는 한국인이 아무도 없었을 때도 오찬영이 뛰고 있는 코트를 지켰다. (경기 후반에 송형근 코치가 오찬영 경기를 지켜봤다)

 

▲ 바리오스의 드롭샷은 매우 정교하고 좋았다. 네트를 살짝 넘어가 떨어졌다. GIF파일은 볼이 지면에 바운스 된 후 역회전을 먹어 네트 방향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