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피플
피플동호인
[인터뷰] 가수 서유석의 테니스 이야기
방극용 기자  |  bgj@tennispeople.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4.16  11:57:48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삼십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엔 등산가고 화요일엔 기원 가고 수요일엔 당구장에서,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상갓집.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 가수 서유석(카토 고문)씨를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신곡 앨범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의 1절 가사다. 4절까지 있는 이 노래는 지난 2014년 초에 인터넷에 올려져 검색수가 80만건이 넘었다. 정식 앨범이 나오지도 않았고 가사집도 없는 상태로 많은 이들이 부르고 기록한 검색수다. “지난해 조용필이 신곡을 냈는데 조회수가 10만건이 안됐다.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내 목소리도 아닌데 80만건이 넘었다”
 
 이 기이한 사건의 주인공은 서유석이다. 통기타 가수인 쎄시봉(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과 함께 70~80년대를 풍미했던 서유석은 20대에 대중 가수로 데뷔하여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45년생으로 올해 70이 넘은 그는 지금 테니스 전도사가 됐고 30년만에 앨범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그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      1969년에 ‘사랑의 노래’로 데뷔한 후 가는 세월, 아름다운 사람, 타박내, 홀로 아리랑 등 수 많은 히트곡을 터트렸다. 올해 70의 나이에 새 음반을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참 때는 1~2년 간격으로 음반을 냈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란 노래는 노인에 대한 노래다. 요즘 60대 노인들은 예전의 50대보다 젊은 생각으로 산다. 그런데 권리만 있고 할 일(책임)이 없다. 노인들의 자존심을 살릴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이 노인이었기에 따라 부르기 쉽게 만들었다. 3년 전부터 통기타 들고 노래를 불렀더니 후렴구가 따라 부르기 쉽다며 매우 좋아했다. 내 노래를 따라 패러디가 나왔고 할머니 합창단이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퍼지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1년 검색수가 80만건이 넘었다. 조용필이 지난해 신곡을 발표했는데 10만건이 안됐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80만건이 넘은 것은 하나의 기이한 사건이다.
 
-      가장 애착이 가는 곡과 경제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곡은 무엇인가?
경제적으로는 가는 세월이 가장 도움이 됐다. 곡의 인세를 받아 평창동에 200평의 건평 건물을 지었다. 동의보감에 보니 사람이 살아가는데 유익한 칸수가 있더라. 1인 7칸이 가장 적합하고 그것보다 적거나 많아도 안 좋다. 1칸은 1평이다. 가족이 셋이었는데 200평이다보니 문제가 생겨 2년만에 그 집에서 나왔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하늘’이다. ‘73년에 동양방송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심야 생방송에서 반체제 발언을 했다. 월남전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생방송이 나가자 마자 안기부에서 전화가 왔다. 30분짜리 음반을 걸고 바로 야반도주했다. 대전으로 내려갔는데 붙잡힐까 봐 3년동안 서울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때 가을 추수 끝난 들판에 누워 만든 노래가 박두진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하늘’이다. 그 노래를 만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 새끼 죽인다’는 마음에서 ‘다 이유가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했다. 한 없는 자연의 위대함이 나를 감싸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다. 순수하게 나를 위한 노래로 지금도 살아가는 관계에 있어서 불편함이 생기면 그 노래를 부른다.
 
   
▲ 2014카토 랭킹 시상식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서유석
 
-      2000년에 서울교통문화상을, 2002년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수상 이유가 무엇인가?
‘77년부터 MBC FM의 푸른신호등을 20여년 가까이 진행했다. 도로교통과 관련된 방송이었기에 자동차 생산국으로써 교통문화 수준을 높이고 지켜 나가야 한다는 캠페인을 많이 했다.  2002년 김대중 정권 때 국무총리 산하에 교통문화연구회에 생겼는데 관련 방송을 하는 실무자로서 연구회에 참여했다.
 
-      푸른신호등이란 프로그램을 20여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치안본부(지금의 경찰청)에 테니스를 좋아하는 지인이 있었다. 그는 ‘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 외국인들이 김포공항에 들어와 택시를 타게 된다. 그들이 불친절하면 우리 나라에 대한 첫인상부터 나빠진다”라며 불친절한 택시기사들을 어떻게 하면 친절한 기사로 바꿀 것인가에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택시기사를 때려 잡으려만 생각했지 대우해주려고 생각한적 있느냐? 40년 무사고 택시기사에게는 무조건 개인택시 1대씩을 주고, 30년 무사고 기사에게는 택시 값을 할인해 주라”고 말했다. 내 이야기는 기획안으로 작성되어 청와대로 올라갔고 그대로 실행 되었다. 그때부터 무사고 운전자들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는 개인택시 영년 표시제가 시행됐다. 택시기사들은 목표가 생겼고 친절해졌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택시기사들께 좋은 일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 독도 지킴이로써 자부심이 대단했다. 2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열정적으로 이야기 했다.
 
-      ‘90년에 발표한 ‘홀로 아리랑’은 독도에 관한 노래다. 최근 아베정권이 갈수록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독도 사랑회’의 회장이었고 독도 지킴이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우리민족이 독도에 너무 무관심했다. 독도에 대해 이야기 하면 잘난 체 하며 애국자 노릇 한다고 했다.  보도국 기자들이 그랬다. “그래 나 애국자다. 그럼 넌 애국자 아니냐?”라고 대응했다. 2000년 11월 22일이 독도 사랑회 설립 허가일인 데 독도 관련한 사단법인 1호다. 그런데 지금은 해양수산부에 독도라는 이름이 붙은 단체가 1천500개다. 대단히 성공했다고 본다.
독도와 관련하여 한창 신나게 일할 때 일본의 니혼TV와 NHK TV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MBC 8층에 입주해 있던 후지TV 지국장이 니혼TV와 NHK TV에서 인터뷰 요청이 올 거라며 미리 알려주면서 절대 인터뷰 하지 말라 했다. “왜?”냐고 물으니 “일본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연구 단체가 200개가 넘는다. 일본 정부에서 알게 모르게 지원하고 있다”며 내가 인터뷰를 하게 되면 그들을 무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 했다. 우리는 하나도 없었는데 그들은 이미 200개가 넘는 독도관련 연구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안했다. 2년 후 후지TV 국장이 “일본 방송이 한국에서 난 기사들을 짜깁기해서 방송에 내보냈다. 그리고 일본정부가 정식으로 독도 관련 단체에 지원을 했다”라고 전해주더라.
 
 독도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부르르 떨다가 금새 잊어 버린다. 결코 도움이 안되는 대응방법이다. 이미 독도는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다. 그들이 뭐라 하건 무시하고 냉정해져야 한다. 우리는 조용히 독도에 관한 자료 수집하고 국제사회에 독도가 우리땅임을 알리면 된다. 또한, 정부의 지원 하에 전 세계에 독도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찾아 수정 작업 해나가면 된다.
 
-      테니스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맘 먹었을 때 접했으면 지금 테니스협회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때 아버지께서 공무원이셨는데 미국 애들의 구호물자 중 테니스라켓과 탁구라켓이 있었다. 테니스는 배울 곳이 없었기에 테니스라켓으로 제기를 치며 놀았다. 말하자면 배드민턴과 같다. 대학 3학년때, 난 핸드볼 선수였다. 핸드볼 코트로 가는 길에 테니스 코트가 있었는데 후배인 김성배(KBS해설위원)가 1시간만 테니스 코트에서 놀다 가라고 붙잡았다. 그때가 60년대다. 그때 성배에게 15분씩만 레슨 받았어도… 난 MBC보도국의 스포츠 프로 최초의 앵커다. 각 종목의 선수들을 만났다. 그 중 테니스의 전영대 감독도 있었다. 태릉에 오라고 했다. 그런데 또 못했다. 스포츠 국장이 “스포츠 앵커인데 골프도, 테니스도 안하면 되나?”라고 해서 골프를 시작했고, 60넘어서 테니스를 시작했다.
남 몰래 배우려고 성북동 산꼭대기에 있는 코트에 가서 배웠다. 6개월을 열심히 레슨 받았고 삼청테니스 코트에서 첫 데뷔를 했다. 사람들이 한 10년 쳤냐고 물었다. 핸드볼을 했기에 테니스가 어렵지 않았다. 지금 70이 넘었는데 국화부 아줌마들과 즐길 실력은 된다.
 
   
▲ 동호인들과 테니스를 즐기고 있는 서유석 사진제공: 선진승
 
-      늦깎이 테니스 매니아가 되었는데 테니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지금도 주 3일은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사실 요즘은 테니스를 많이 못했다. 테니스는 사람들과 사귀는데 매우 좋다.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많은 이들이 테니스를 즐겼으면 좋겠다.
지금도 300g짜리 라켓을 사용하고 있다는 서유석씨는 테니스를 오래 오래 즐기려면 준비운동이 필수라며 웃는다. 그는 2월이 가기 전에 음반을 낼 예정이라 했다. 그것도 CD가 아닌 LP음반 한정판으로 낼 생각이다.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창업자이자 전세계 외식산업의 창시자인 커넬 할랜드 샌더스는 66세에 체인사업에 진출하며 대성공을 이뤘다. 그는 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 ‘은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 70이 넘은 서유석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인터뷰 하는 2시간 내내 그는 열정이 샘솟고 있었다. 

 

참고) 이 기사는 2015년 1월 말에 작성되어 테니스 피플 신문에 게재 되었던 기사입니다. 당시 지면 여건상 게재되지 못했던 부분이 추가되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관련기사]

방극용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뒤로가기 위로가기
테니스피플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614-2 원당메디컬프라자 606호  |  대표전화 : 031)967-2015  |  팩스 : 031)964-7780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 다 50250(주간)  |  출판사 신고번호:제2013-000139호  |  상호명 : (주)스포츠피플 | 테니스피플  |  사업자등록번호:128-86-68020
대표이사·발행인 : 김기원  |  인쇄인:김현대  |  편집국장 : 박원식  |  정보기술책임 : 최민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민수
Copyright © 2011 테니스피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ennispeopl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