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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경기 때 국민의례 꼭 해야 하나
이병효(코멘터리 발행인)  |  bbhh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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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6  2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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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프로 스포츠 경기가 열릴 때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연주되고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해서 국기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홈팀에 의해 뽑힌 가수 또는 다른 누군가가 의해 불러지는 미국 국가는 노래의 끄트머리 절정 부분에서 한 순간 경기장을 록 콘서트의 열광으로 몰아가고는 한다.

미국의 이런 관행은 2차 세계대전 때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 이전에는 야구 개막전과 월드시리즈, 독립기념일 등 공휴일 주간 경기 때만 연주되던 국가를 매 경기마다 부르게 된 것이다. 전쟁 통에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군을 적극 지지‧성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였다. 농구와 풋볼 등 종목도 곧 야구를 뒤좇아 갔다.

야구경기에서 처음으로 미국 국가를 부른 해에 관해서는 1862년부터 1917년까지 사이에 여러 설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하는 기원은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가 맞붙은 1918 월드시리즈의 첫 경기(9월5일)다. 홈런 타자로 유명한 베이브 루스는 당시 레드삭스의 주전 선발투수로 출전해 게임1과 게임4에서 13회 연속 무실점 2승을 기록했다.

시카고 코미스키 파크에서 열린 경기 7회초와 말 사이의 이른바 ‘7회 스트레치’ 시간에 운동장에 나왔던 군악대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자 군인 신분으로 경기 참가를 특별히 허가 맡았던 컵스 3루수 프레드 토머스가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했고 관중들도 가슴에 손을 올리고 힘차게 국가를 제창했다. 당시 1차대전의 와중에 유럽전선에서 10만 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은 상황이라 극도로 침울했던 분위기에 애국 열풍으로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게임4부터 게임6까지 열린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는 국가 연주가 경기 시작으로 옮겨졌다. 이 모든 경위를 우리가 아는 것은 <뉴욕타임스>가 일의 전말을 자세히 보도한 덕분이다. 기록이 없으면 사건dl 일어나도 자초지종을 알 수가 없는 법이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야구장과 라디오방송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국민 6백만 명의 서명을 얻어 1931년 국가로 공식 지정됐다.

미국의 국가는 우리나라의 애국가와 사뭇 다르다. 우선, 미 의회는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국가로 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한민국에는 법률상으로는 국가가 없고 애국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다음으로, 한‧미 두 나라 국가의 느낌이 판이하다. 미국은 격앙된 곡조에 가사도 호전적이다. 우리는 느린 가락에 노랫말도 평화롭다. 미국만이 아니라 프랑스의 ‘라 마르셰예즈’나 중국의 “의용군 행진곡‘ 등 많은 나라 국가가 행진곡풍의 군가다. 우리나라 애국가는 전쟁보다 기원에 의해 나라를 지키려한다는 점에서 영국의 국가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나 일본의 ’기마가요‘와 같은 줄기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국가가 경기장에 울려퍼질 때는 흔히 의장대의 호위를 받는 기수단이 입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1812년 미영전쟁에서 유래한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지극히 군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과 연결돼있다. 우리 경우는 애국가는 군보다 독립운동에 나선 애국선열을 연상하도록 한다. 전투적 분위기보다는 말 그대로 장엄한 의례의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기 시작 전에 국가를 부르는 일이 없다. 영‧불‧독은 물론 베네룩스, 스칸디나비아와 캐나다가 그렇다. 반면 영국의 하층계급이 주류인 호주에서는 국가가 연주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축구장에서 훌리건들이 유니온잭을 몸에 두르고 응원하는 일이 잦아 국가상징 부각이 부정적 인상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 정서 표출을 꺼려왔던 독일이 2014 브라질 월드컵 때에는 열정적으로 국기를 흔들고 국가를 부르는 쪽으로 돌아섰다.

우리나라도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관중석에서 대형 태극기를 펼치는 세레모니로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사실 종목을 막론하고 국가대항전에서는 국기와 국가가 등장하고 국민의례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국내 팀끼리 벌이는 프로 경기에서 왜 국민의례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답이 없다. 당장 우리나라 안에서도 야구와 농구는 경기 전에 국민의례를 하는 반면 축구와 배구는 하지 않는다. 야구와 농구 선수가 축구와 배구 선수보다 더 애국적이라서 그렇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야구와 농구, 배구는 모두 미국에서 비롯된 스포츠다. 그런데 우리나라 야구와 농구는 미국을 너무 맹목적으로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있다. 미국에서 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유난히 엄숙하게 경례하는 것은 그들이 역사가 짧은 다민족 국가여서 국기‧국가와 같은 상징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면 국민적 단결심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이 통일국가를 이룬 지가 천년을 훨씬 넘었다. 따라서 태국기와 애국가를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민족정서와 국가의식을 지배하는 문화적 정체성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다고 해서 우리도 비슷한 짝퉁을 만들고, 미군부대 하기식이 멋있다고 차지철 경호실장이 경복궁에서 나치 친위대를 본뜬 군복을 입혀 하기식을 벌인 것이 한때 우리나라 지도층의 수준이다. 25일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천안함 폭침 5주년을 맞아 군 장병 전원의 군복에 태극기 패치를 부착하도록 한다고 한다. 한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벨크로식으로 착탈이 가능하게 한다한들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테러 표적이 되기 쉽다.

또 2차 대전 때 미군이 군복에 성조기 마크를 붙인 것은 연합국 군대 가운데 한눈에 미군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해외 파병한 상황에서 유엔기 등과 함께 붙인다면 모를까 국군이 제 나라 안에서 왜 군복에 태극기를 붙여 동맹국 군대와 달라보여야 한다는 말인가. 국방부는 이런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방산비리를 확실히 척결하고 군인연금 개혁하는 일에나 신경을 더 써야 할 것이다.

운동경기 앞두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꼭 해서 안 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70년대 풍경처럼 지금에 와서 길 가는 버스를 붙들어 세우고 애국가를 틀어댄다면 또 하나의 시대착오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국가대표팀이 다른 국가대표팀과 대결할 때 누가 뭐라지 않아도 팬들은 태극기를 휘두르며 자발적으로 응원한다. 지역과 기업으로 편을 갈라 겨루는 프로경기에서 애국가를 틀어대며 느닷없이 나라사랑을 부르짖는 애국심 마케팅, 이제는 잠시 제쳐둬도 괜찮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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