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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화사한 봄날 테니스를 즐기는 70대와 10대
방극용 기자  |  bgj@tennispeo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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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5  02: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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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세찬 바람과 함께 영하로 떨어졌던 기온이 살짝 올랐다. 사람이란 본시 간사한 것일까? 이제 봄인가 생각하다 갑자기 맞닥뜨린 영하의 기온인지라 더 추웠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이 추위를 꽃샘 추위라 부르는데…피지도 않은 꽃에 샘을 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근 3주를 이런 저런 연유로 쉬지 못했다. 출·퇴근이 엄격하지 않은지라 상황에 따라 시간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또 있는 대로 탄력적 시간활용을 하는데 최근 도통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생활 했다.
그래 맘 먹고 하루 놀아 볼 심산으로 13일 오전에 오륜코트를 찾았다. 10시 반쯤 도착한 코트엔 빗물이 고여 있었다. 내가 사는 곳엔 빗물이 살짝 비치다 말았는지 바닥에 살수차가 지나간 듯한 흔적만 있었다. 그런데 이곳엔 새벽에 비가 제법 왔나 보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더니…”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세계적 인기 상품이라는 봉지 커피 한잔을 종이컵에 탔다.
 
 바람이 간혹 선선하게 불었지만 날은 따뜻했다. 따뜻한 햇살이 좋다. 코트 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사시사철 비바람이 못살게 굴어도 따뜻한 햇살에 위로 받는…이제는 오랜 세월에 살짝 맛이 간 나무 의자다. 비오 듯 땀을 쏟아 낸 후 시원한 맥주 한 캔에 행복해 했던 나는 지금 이순간,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지금 이 순간이 지극히 행복하게 느껴진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종지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가끔씩 코트를 일깨우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은 빗물에 젖었던 코트를 산뜻하게 말려 놓았다.
 
 오후 3시 반…
족히 칠순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레슨을 받는다. 갑자기 궁금해 졌다. 저 연세에 테니스 레슨을 왜 받을까? 얼마나 더 잘 치시려고? 40대 후반의 내 몸도 점점 기름 안친 자전거처럼 삐그덕 거리기 시작하는데 저 연세에….왜?
   
 
기자는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궁금한 것을 대신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지인에게 들었다. 그 분의 말씀이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는 위정자가 판을 치고 부정 부패가 만연하게 된다고 한다. 이 말은 정치, 경제와 그다지 큰 관련이 깊지 않은 테니스 전문 기자일지라도  "왜?" "이유는?"이라는 단어가 항상 머리속에 남아 있게 만들었다. 고령의 어르신이 레슨을 받는 모습을 보자 "왜?"라는 단어가 역시 머리속에 떠올랐고 궁금증이 증폭됐다.
그래서 그냥 편한 맘으로 여쭸다.
 
-      올해 연세와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내 이름은 허종욱이고 올해 73살됩니다.
 
-      이곳(송파)에 사시나요?
저 뒤쪽 올림픽 아파트에 살아요.
 
-      테니스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80년도엔 테니스가 붐이었다. 어지간한 남자들이 테니스 라켓을 잡지 않으면 쳐주지 않았다. 일본 출장 갔을 때 가와사키, 후다바야 라는 라켓을 사가지고 와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그때는 테니스 선생도 별로 없었다. 집 근처 학교에 백 보드가 있었는데 겨울 3개월동안 백 보드 연습을 했다. 그리고 테니스 클럽에 가입해서 볼을 쳤다. 나보다 잘 치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목표로 잡고 테니스 연습을 했다. 내가 한국산업은행을 다녔는데 그때 김문일, 김성배씨가 한참 테니스를 날리던 때다. 나와도 함께 테니스를 즐겼다. 그렇게 7~8년을 쳤다. 내가 잘 치지 못할 때 나보다 잘치는 테니스 선배들을 한명씩 이겨보겠다는 목표를 두고니스를 했더니 점차 실력이 좋아지더라. 복식이다 보니 자신의 랭킹을 잘 몰랐다. 클럽 회원 중 24명을 뽑아 단식랭킹을 시작했다. 내가 챔피언을 했다.
 
-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계시는지요?
90년도에 골프를 하면서 테니스 라켓을 놨다. 처음엔 테니스를 하면 골프가 안 된다고 해서 아예 테니스를 치지 않았다. 그런데 테니스건 골프건 기본 원리는 같더라. 테니스를 할수록 골프가 잘 된다.
 
-      연세가 73세신데 어떤 이유로 레슨을 받으시는지요?
친구들은 처음 시작해서부터 쉬지 않고 테니스를 꾸준히 쳤다. 한 참 나랑 칠 때는 내가 실력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난 골프를 치면서 테니스를 놨고 그 친구들은 쉬지 않고 계속 쳤다. 그 친구들과 테니스를 하는데 내가 실력이 떨어져 게임이 잘 안됐다. 그래서 함께 테니스를 즐기기 위해 레슨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받기 시작했다. 이번 달 말부터 그들과 함께 테니스를 할 것이다.
   
▲ 허종욱 씨는 장세영 어린이가 레슨 받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기자의 질문은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허종욱 씨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 테니스가 80년대는 국민적인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그때의 그 좋은 분위기가 왜 지금까지 연결이 되지 않는가? 그것은 협회의 문제가 크다. 경기인 출신들이 협회장을 했다. 경기인 출신들이 테니스 자체는 잘 칠 수 있을지라도 협회장이라는 자리는 경영인의 자리다. 스포츠 경영인 것이다. 그런데 경기인 출신들의 협회장들이 경영이란 생각을 안 한다. 지금도 실업테니스를 하고 있는데 신문에 혹시 나오나 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데 한번도 나오지 않더라. 기록이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 아니냐? 일간지건 어떤 신문이건 기록이 되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다. 오늘 보니 라커룸 책상 위에 테니스신문이 있더라. 있는지 몰랐는데 기분 좋았다. 테니스가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박세리가 우승을 하고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박세리 키즈들이 육성되고 지금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지 않나? 테니스가 붐이 일어 났을 때 그 붐을 협회장들이 잘 끌고 왔어야 한다. IMF때 경기가 위축되자 많은 사람들이 취미생할을 멈췄다. 그리고 IMF가 극복되고 경기가 좋아진 후 테니스를 쳤던 사람들이 다 골프로 옮겨가 버렸다. 테니스가 가장 후퇴된 것 같다.
 
허종욱 씨는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자회사로 옮겨 대표이사를 역임한 후 다른 기업에서 회장으로 있다가 66세에 은퇴해 여생을 즐기며 산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허종욱 씨가 레슨 볼을 줍고 있을 때 어린 소녀가 함께 카트에 볼을 담고 있었다. 그 소녀는 11살, 세륜 초등학교 4학년으로 이름은 장세영이다. 세영이는 3시가 조금 넘어서 코트에 도착했다. 허종욱 씨가 레슨을 받고 있을 때 세영이는 잠시 슈퍼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서 입에 물고 다시 코트에 나타났다. 허종욱 씨는 세영이가 레슨을 받는 모습을 어머니와 함께 지켜보며 "아이구...어린데도 잘하네~"를 연발했다. 흡사 자신의 손녀가 레슨을 받는듯한 모습을 지켜보듯 사랑스럽게 세영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레슨이 끝나자 함께 볼을 주워 담았다.
 
   
 
 
세영이가 레슨을 받는 동안 잠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      언제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했나요?
오늘로 일주일 됐어요. 월·목·금 주3회 받아요.
 
-      아이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는 목적이 있나요? 예를 들면 외국의 유명 대학에 진학을 목적으로 배우는 학생들도 가끔씩 있는데?
아니요? 그냥 취미예요.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아이가 운동을 매우 좋아해서 취미로 해요. 스케이트, 수영도 했어요.
 
-      가족 중에 테니스 하는 사람이 있나요?
아버지가 테니스를 해요. 20년 됐어요.
 
-      어머니께서는 안 하세요?
저도 조금 배우다가 그만 뒀어요. 애들 때문에….
 
-      세영이가 테니스를 좋아하나요?
더 어렸을 때 어린이 아카데미도 데리고 갔었어요. 그런데 흥미를 갖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좋아해요. 테니스가 재미 있대요.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운동하러 가야 하니까 빨리 숙제하자 하면 더 집중해서 빨리 해요. 테니스가 좋은가 봐요.
 
-      아이는 세영이 혼자인가요?
오빠가 있어요. 14살. 오빠는 BMX 자전거를 타요. 크라운해태에서 스폰 받아서… 저 라켓도 사실 오빠거예요. 어렸을적 세영이랑 오빠랑 사줬는데...예전에 샀던 것은 너무 작아서 이제 못쓰고...저거 써도 된다고 해서 오빠것을 사용하고 있어요.
 
세영이 어머니는 세영이가 레슨 끝날 때까지 내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사랑스러운 미소가 내내 머물러 있었다. 세영이에게 물었다.
 “세영아…테니스 재미있어?” 잠시 대답하기를 꺼려하던 세영이는 “네…재미있어요”라고 대답하고 웃는다.
 
   
▲ 장세영 어린이. 테니스가 너무 재밌다 한다
 
 73세의 어르신과 11살의 아이. 그들의 나이 차이는 무려 62살이다. 유 소년기에 시작한 운동을 노년기에 접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몇 안 되는 운동에 테니스가 중심에 있다. 테니스는 남녀노소가 한 코트에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햇살 따스하게 내리는 오후, 황토 코트 위에 노신사와 어여쁜 소녀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음은 테니스라는 운동이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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