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간통죄가 62년 만에 폐지됐다. 헌재가 모처럼 말이 되는 결정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애초부터 도덕문제에 국가가 개입해서 형벌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은 지나간 조선시대에서 끝내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또 이번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종교도덕적 죄악(sin)과 심리적 죄책감(guilt), 사법적 범죄(crime)를 구별할 필요도 있다.

지난 2004년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라고 한 다음부터 헌재가 내린 결정에 대해 일정한 불신과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세종시 이전은 애초 ‘정치적 계산에 따른 얕은 수’이기는 했지만 관습헌법이라는 억지 개념을 끄집어 내 이를 훼방하려는 부동산 기득권세력의 안간힘도 못마땅했다. 수도 서울이 관습헌법이라면 한양 천도 전에는 우리나라에 관습도, 헌법도 없었다는 뜻이 아닌가.

2007년 재외국민 투표권 거부가 헌법불합치라는 결정도 그렇다. 세금도 안 내는 이민자에게 무슨 투표권을 준다는 말인가. 그 결정으로 덕을 보는 것은 졸지에 직원 수십 명을 해외 파견하게 된 중앙선관위 밖에 없다, 또 선거 때마다 광고를 싣게 된 교민신문사 정도랄까. 이런 비현실적 결정 때문에 엄청난 국고낭비를 하고 있으니 헌재는 대오각성해야 한다. 미국이나 프랑스가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은 그들 나라가 해외에 식민지나 군사기지를 가진 제국이기 때문이고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최근의 가장 터무니없는 결정은 지난해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원래 민주국가에서 정당을 해산하려면 그 정당이 국가와 사회에 ‘현존하고 긴박한 위험’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통진당이 얼마나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입증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가 극악한 반국가단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고, 또 통진당의 강령과 정책, 주장이 상당히 무책임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들의 정치결사언론 자유는 보장돼야 했다.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은 가장 인기 없고 심지어 혐오스러운 사람들부터 존중해야 한다. 미운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면 나머지 사람에 대해서는 저절로 지켜지기 때문이다.

간통죄는 처음부터 형법의 저촉 대상이 안 되는 것이 옳았다. 혼인은 성인 간의 자유의사에 따른 임의의 계약이고, 국가는 운전면허나 부동산등기처럼 결혼 라이센스를 발급하는 것이 주 임무다. 국가가 개인의 순결과 정조를 지켜주겠다는 생각 자체가 건방진 발상이고 과도한 간섭이다. 결혼하면서 배우자를 극심하게 속였다거나 권력과 금력으로 강제했다든지 아니면 강간 등 폭력을 행사했다면 그 결혼은 당연히 무효일 뿐 아니라 유책 당사자를 사기와 협박, 폭력 등 혐의로 형사상 처벌하고 민사상 배상토록 하면 되는 일이다. 국가가 요건을 갖춘 결혼을 불허하거나 배제, 관리할 사항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1990년부터 네 번째 심사 끝에 위헌결정을 내렸다면 그 전 세 번의 합헌 결정은 어떻게 봐야할까. 옛날 박정희 정권이 삼선개헌을 추진하면서 “법(法)은 ‘삼 수 변에 갈 거 자’니 물이 흐르는 대로 바꿔야 한다”고 궤변을 했는데 시대가 바뀌니 헌법 해석도 바뀌었다고 둔사를 늘어놓는 것이 꼭 온당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과거에 합헌 결정에 참여한 헌재 재판관들은 집단 사과하고 봉급이라도 반납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농담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통죄의 법적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형법을 끝내 개정하지 않은 입법부와 지난 몇 십 년 동안 해마다 법무부 연초 보고 때마다 ‘간통죄 폐지’를 추진사항으로 올려놓고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방치한 행정부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1989년이었다고 기억한다. 외교부의 전신 외무부 기자실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아침 신문에 법무부가 간통죄 폐지를 추진한다는 기사를 보고 누군가 “간통죄가 없어지면 혼인빙자간음죄(혼빙간)는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기자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한쪽은 혼빙간은 혼인의 온전성과 부녀의 정조를 보호하자는 간통죄의 논리적 연장이니 간통죄가 폐지되면 당연히 혼빙간도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한쪽은 혼빙간은 일종의 위계에 의한 기망행위이기 때문에 상호 합의하의 화간이라는 축면과는 별도로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그 자리의 기자들 가운데 법학 전공자는 우연히 없었다. 하지만 ‘법의 기본은 상식’이라는 법언대로 상식에 입각해 의견을 나눈 것이었다. 전자의 의견 쪽에 섰던 사람으로서 기자는 남녀 구별 없이 성인이라면 누구나 인간으로서 주체성과 자기결정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성년자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은 경우가 전혀 다르다. 일정 연령 이하의 미성년자와 합의 하에 성행위를 하더라도 강간에 준한 처벌을 하는 것은 당시에도 이미 국제적 기준이었다. 또 의사결정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과의 구두 계약은 일반 법리에 따라서도 원인무효다. 결국 강간이나 위계에 의한 성추행은 있을망정 혼인빙자간음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여성에 대한 모독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본 것이다.

당시 토론에서 어느 쪽이 결국 옳았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은 뉴스를 열심히 따라잡지 않은 경우라 할 수 있다. 혼빙간은 지난 2009년 헌재에 의해 위헌 결정이 이미 내려져 즉시 폐지됐기 때문이다. 간통죄가 폐지되기 5년 전에 혼인빙자간음죄가 먼저 없어진 것이다. 아마 몇 십 년도 지나지 않아 “옛날에는 간통이나 혼인빙자간음을 범죄로 취급했었다”며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될 것이다. 결혼과 가족은 국가나 공권력이 일정 범위를 넘어 틈입할 사안이 아니고 문제가 생겼을 때도 먼저 가족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 전문가나 사회단체 등 제3자의 조정, 중재 등 역할이나 가정법원 등 국가기구의 개입도 당사자의 요청이나 제소가 있어야만 한다.

이제 간통죄나 혼인빙자간음죄 같은 개념은 형사법정에서 영구 추방하는 대신 개인 간의 문제로 다루고 정 부득이한 경우 민사상 다툼으로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아울러 간통죄가 폐지되면 성생활이 문란해지고 결혼제도가 위협을 받는다는 둥 부질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은 행여라도 없었으면 한다. 1980년대 초 6‧25 이후 몇 십 년 동안 지속되던 야간통금을 해제할 때서 범죄 증가 등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당장 해제조치 이튿날부터 그런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걱정하던 부정적 변화와 부작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내 길거리마다 삼엄하기 짝이 없던 헌병‧경찰의 삼엄한 합동검문은 사실 허튼 짓에 지나지 않았다.

차제에, 매매춘을 금지하는 성매매특별법 등 현행법규에 대해서도 재론이 필요하다. 성 매매는 과거 조직범죄의 착취대상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간통이나 간음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의 영역에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부 룸싸롱이나 안마시술소, 집창촌 등 성매매업소를 합법화할 것인가 여부는 또 다른 사회정책문제이지만 개인 간의 계약으로 성을 사고파는 것을 금지하고 공권력이 개입해서 적발, 처벌하는 것은 앞으로 언젠가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현재 유럽의 여러 나라 등이 매춘을 합법화하고 범죄보다는 사회보건문제로 다루는 것을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도박죄나 대마초관리법 및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도 이제부터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