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는 즉석에서 사인한 볼을 크리켓 배트로 쳐서 관중들에게 나눠주었다. 복식 경기에서 승리한 팀의 경우는 한 명이 볼러(투수) 역할을, 다른 한 명이 배트맨(타자) 역할을 하며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크리켓의 나라 인도다운 팬서비스였다

2015 첸나이오픈의 최고 스타는 단연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다. 그런데 인도 팬들은 바브링카의 경기 못지않게 꼭 챙겨보는 경기가 있다. 바로 레안더 파에즈의 복식 경기다.

개인통산 54회의 복식 우승기록을 가진 파에즈는 인도 남자 테니스의 전설이다. 43세의 나이에도 복식 랭킹 28위(인도 1위)에 올라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첸나이오픈에서는 6차례 복식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다.

라벤 클라센(남아공)과 함께 1번 시드로 출전한 파에즈는 지난 8일 마헤시 부파티-사케스 미네니(이상 인도) 조와 8강전에서 맞붙었다. 인도 선수간의 맞대결로 관심을 끈 데다, 이 대회에서만 5번의 우승을 합작했던 ‘단짝’ 부파티와의 대결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파에즈는 부파티와의 자존심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사력을 다했다. 서브를 넣을 때는 물론 발리를 시도할 때도 경기장 전체를 압도할 만한 기합소리를 질렀다. 전위에서 버티고 있는 파에즈는 마치 ‘통곡의 벽’ 과도 같았다.

인도 팬들은 파에즈에게 경기 내내 일방적인 응원을 퍼부었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에서는 다소 조용했던 관중들은 플레이 하나하나에 환호했다. 복식경기의 묘미를 잘 아는 인도 팬들은 수준 높은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파에즈도 관중들의 성원에 보답하듯 묘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선보여 함성을 이끌어냈다. 1세트를 1-6으로 내줬지만, 2세트에서는 파에즈의 강력한 스트로크와 과감한 네트플레이가 되살아났다. 여기에 클라센의 강서브를 곁들여 6-1로 경기의 균형을 맞췄다. 슈퍼 타이브레이크에서는 막판 집중력에서 빛난 파에즈-클라센 조가 10-7로 승리를 거두었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인도 팬들과 함께한 파에즈는 코트에 모인 팬들과 하나가 됐다. 열광적인 분위기를 즐기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김없이 위닝샷을 뿜어냈다. 경기장 열기가 과열되자 손을 들어 자제시키기도 했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관중들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날 경기 후 “수준 높은 경기를 펼쳤다” 자평한 파에즈는 “오랫동안 부파티와 함께 호흡을 맞추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나온 플레이가 결국 승패를 좌우했다” 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변함없는 실력을 뽐낸 파에즈는 첸나이오픈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됐다. 이쯤 되면 첸나이 SDAT 테니스 스타디움을 파에즈 전용구장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