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오픈과 호주오픈 우승자 리나(중국), 전 세계 4위 니콜라이 다비덴코(러시아), 마라 사핀의 여동생인 전 세계 1위 디나라 사피나(러시아) 등이 올해 은퇴했다. 나이와 부상, 성적 부진 등이 은퇴의 이유다.

이런 가운데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4)도 최근 은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페더러는 16일 런던에서 열린 투어 파이널 결승을 앞두고 "등 부상(back injury)으로 경기를 할 수 없다"며 테니스 팬들 앞에서 사과 인사를 했다. 페더러의 경우 그동안 결승을 앞두고 기권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일부 테니스인들과 전문가들은 테니스 선수가 소근육이 아닌 대근육 부상을 입으면 포핸드 스트로크와 서브를 강하게 넣을 수 없어 선수생활을 계속 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세계 1위 피트 샘프라스의 은퇴도 대 근육의 부상으로 투어 생활을 중단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샘프라스는 2002년 1,2회전 탈락을 수시로 하다가 US오픈 우승을 끝으로 공식경기에 나오지 않았다. 페더러도 샘프라스처럼 은퇴하기에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지만 투어 파이널 결승 기권에 이어 페더러는, 21일 프랑스 릴에서 열린 데이비스컵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상대전적 8승2패로 우세했던 상대인 가엘 몽피스에게 0-3으로 맥없이 무너졌다. 몽피스와의 경기에서 세트마다 1~2번의 서브 게임 브레이크를 당했다. 서브가 주특기인 페더러로서는 말이 안되는 게임 내용이었다.

페더러 팬들로서는 정상의 위치에서 좋은 이미지를 남기며 은퇴를 바라는 마음을 비치고 있다. 하지만 페더러의 최근 10년 성적을 살펴보면 은퇴 이야기는 시기상조로 비쳐진다.페더러의 올해 승률은 최근 10년사이 세번째로 좋은 87%에 달한다. 페더러는 2006년 95%로 가장 높고, 2007년에 88%였다.그리고 올해 87%를 기록했다. 대회 결승만 11번 진출했다.

페더러 연도별 승률

연도 승률
2006 95%
2007 88%
2008 81%
2009 84%
2010 83%
2011 84%
2012 86%
2013 73%
2014 87%

승률로만 보면 아직 은퇴하기는 이르다. 정상에서 한없이 내려가던 랭킹도 1위 재탈환도 노리면서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페더러 자신도 지난 달 상하이마스터스컵 우승때 "최고는 아니지만 멋진 한 해 였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스포츠나 인생에서 상승, 정상, 평탄, 추락 이 네가지는 피할 수 없는 국면이다. 세번째 까지 완벽한 테니스 삶을 살아온 페더러에게 아마도 예측할 수 없는 추락은 가장 흥미있는 주제일 것이다.
페더러는 2002년부터 올해까지 톱10 아래로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지난 13년간 그랜드슬램 결승에 못오른 해는 2002년과 지난해 딱 두번 뿐이었다. 반면에 앤디 로딕, 다비드 날반디안, 레이튼 휴잇 같은 그의 라이벌들은 1,2회전에서 나가 떨어졌다.
그렇다면 페더러의 이런 장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페더러의 경기를 가까이서 보고 있으면 마치 물위에 가볍게 떠서 다니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엄청난 근육량이 아닌 테니스에 딱 맞는 근육량으로 능숙한 발놀림과 완벽한 스트로크 역학으로 매 포인트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한 선수가 페더러다.
노박 조코비치나 라파엘 나달은 햄머와 같은 라켓을 들고 테니스코트라는 채석장에서 돌을 캐는 것과 같다면 페더러가 쥔 라켓은 붓이었고 코트는 캔버스였다. 채석장 인부가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되지만 노 화가는 여전히 화가이기때문이다.

하지만 페더러도 상황이 늘 같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다시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을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윔블던이면 모를까 다른 그랜드슬램대회 우승을 여의롭지 않아 보인다. 페더러가 최근 2년간 한번도 이기지 못한 나달을 누르거나 8번 가운데 다섯번이나 진 조코비치에게 경기 뒤 네트 앞에서 승리의 악수를 건네는 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심지어 조코비치나 나달이 주고받고 있는 세계 1위 자리를 다시 찾아올 날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더러는 라켓을 놓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포뮬라1 카 레이서 미하일 슈마허가 45살에 다시 복귀하고 크리켓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배트맨의 한 사람인 사친 텐둘카르가 월드컵에 우승하고 은퇴한 것도 다 게임을 사랑했기때문이다.

페더러는 그가 할수있는 한 볼을 때리는 것에서 기쁨을 찾을 것이다. 어쩌면 피트 샘프라스의 선수 말기를 갖지 않을 지 모르지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샘프라스는 "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에 온통 신경을 썼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이점이 페더러와 샘프라스가 다른 점이다.
페더러는 기자들 앞에서 "내가 온통 신경 쓰는 것은 테니스를 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더러는 당분간 은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