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앤디 머레이(왼쪽)가 새 코치 아멜리 모레스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해 윔블던에서 우승한 머레이는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2009년 8월, 영국의 역대 테니스 선수 중 가장 높은 랭킹인 세계 2위를 기록했다. 그는 한때 안드레 애거시와 앤디 로딕의 코치를 맡았던 브래드 길버트를 코치로 영입하기도 했었다. 또한 이반 렌들에 이어 프랑스의 아멜리 모레스모를 코치로 영입해 세계 1위 자리를 도전하도 있다

윔블던 잔디를 관리하는 요원들

‘녹색 코트’의 향연 윔블던 대회가 끝났다. 잘 알려졌듯 윔블던은 4대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잔디코트에서 열린다. 흰색 경기복이 의무화돼 있는 점도 특징이다. 윔블던 특유의 고전적 분위기가 그렇게 연출된다.

잔디코트는 하드코트나 클레이코트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바닥의 성질이 승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침은 물론이다. 잔디코트는 서브 앤 발리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에게 유리할까, 아니면 베이스라인에 바짝 붙어 플레이 하는 베이스라이너(baseliner)에게 유리할까? 윔블던 코트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윔블던 대회에선 전통적으로 서브 앤 발리 전법이 강세였다. 강서브에 이은 전진 네트 플레이가 승리의 공식으로 통용됐다. 잔디코트는 서브가 바닥에 닿은 뒤 공이 낮은 상태로 잔디를 타고 빠르게 흐르는 특성이 있다. 그런 만큼 강서브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라파엘 나달(28·스페인) 로저 페더러(33·스위스) 등이 대표적인 서브 앤 발리형 스타들이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서브보다 코트 구석구석을 넓게 쓰고 베이스라인을 공략하는 선수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많은 선수들이 바운스 뒤 볼 속도가 상대적으로 늦어지고 바운스도 높아졌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잔디 품종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윔블던 코트 바닥은 원래 라이 잔디(rye grass) 50%, 페스쿠 잔디(fescue grass) 및 벤트 잔디(bent grass) 등 50%가 혼합 식재됐다. 이들 품종 중 페스쿠와 벤트 잔디는 잎이 가늘고 땅을 기며 수평으로 자란다. 그래서 바운스 된 공이 낮게 미끄러진다. 강서브와 슬라이스로 깎아 치는 공격형 선수들에게 유리했다. 문제는 이 잔디가 연약해서 격렬한 경기에 잘 손상된다는 것.
과거 윔블던 대회에선 결승전으로 갈수록 베이스라인 부근 등 선수들의 움직임이 많은 곳 잔디가 파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윔블던 대회를 운영하는 올 잉글랜드 클럽(All England Club)은 스포츠잔디연구소와 함께 문제해결에 나섰다. 이에 따라 2001년부터 쓸림에 약한 페스쿠와 벤트 잔디를 배제하고 100% 개량 라이 잔디로 교체했다. 잔디 높이는 예전과 같은 8㎜를 정확히 유지했지만 품종이 바뀌면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윔블던 그라운드관리책임자인 닐 스터블리는 <오스트레일리아 테니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대회 2주째만 되면 잔디가 파여 골치거리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잎이 넓고 튼튼하며 수직으로 자라는 라이 잔디로 바꿨다. 바닥관리 측면에서 결과는 만족스럽다. 전통적인 스폰지 바닥보다 바운스가 약간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잔디 품종 교체는 곧바로 효과를 나타냈다. 2002년 윔블던 대회 남자단식 결승에서 레이튼 휴이트(33·스위스)가 다비드 날반디안(32·아르헨티나)을 상대로 시종일관 베이스라인 플레이를 펼지며 우승을 차지했다. 1982~2001년 이전 20년 동안에는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들이 평정한 가운데 유일하게 안드레 애거시(44·미국)가 베이스라이너로 1992년 윔블던을 제패한 바 있다.

2002년 이후에도 고란 이바니세비치(42·크로아티아) 등 서브 앤 발리 선수들이 우승하긴 했지만 베이스라인 플레이 중심으로 판도가 바뀐 것은 틀림없다. 캐나다 출신으로 대표적인 서브 앤 발리형 선수인 그레그 루세드스키(40·영국)는 “높은 바운스 때문에 강서브 후 네트 플레이 공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윔블던은 베이스라이너들을 위한 코트”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선수들도 윔블던에선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윔블던 남자복식에서 9회나 우승했던 토드 우드브리지(43·호주)는 “과거엔 슬라이딩 서브가 우세했지만 지금은 킥 서브가 훨씬 위력적이다. 선수들이 잔디코트 적응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낀다. 윔블던에서 이기려면 올코트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그 특성을 설명했다.
138년 역사의 윔블던 대회. 총 상금 2500만 파운드(약 433억 원)가 걸린 테니스 종가의 축제는 관전의 즐거움을 더했지만 선수들에겐 까다로운 전술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