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월호 참사와 총리후보 연쇄 낙마라는 인사 참사에 이어 월드컵에서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탈락한 ‘축구 참사’ 등 3대 참사가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축구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어찌 국민적 참사가 될 리 있겠는가. 축구에서 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실한 준비 끝에 어이없게 무너진 것이 참담했다는 것이다. 더 아쉬운 것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책임지지 않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감독과 협회 등 관계자들이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주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발표했다. 때맞춰 나온 보도에 따르면 국민 가운데 과반수가 홍명보 감독이 사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라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7월 1·2일 이틀간 휴대전화를 통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6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2%(표본오차 ±3.8%포인트, 95% 신뢰수준)가 “유임해야 한다”고 답했고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은 31%, 17%는 의견을 유보했다.

이러니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여론조사는 누가 의뢰하고 누가 비용을 부담해서 시행한 조사일까. 한국갤럽이 그 부분을 밝히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언론매체가 이런 조사결과를 그대로 옮겨 보도하기에 앞서 확실히 물어봐서 밝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대명천지에 여론조사기관이 조사결과를 조작이야 하지 않겠지만 조사의 설문문항이나 응답자 선정, 거부자 처리 등 조사 의뢰자에게 유리하게 설계하는 일은 흔하고,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기관의 조사가 없으면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의뢰자의 입맛에 맞는 결과는 발표하고 맞지 않는 내용은 그냥 덮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홍명보 감독이 지금 사퇴를 하나, 좀 있다가 물러나나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어차피 그가 대표팀을 이끄는 한 한국 축구는 잘 나가기 어렵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홍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금방 아시안컵 우승같은 호성적을 내기가 어렵고, 설사 4년 뒤 러시아 월드컵까지 감독직을 유지한다 해도 16강 진출 같은 실적을 올릴 가능성은 적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홍명보 감독은 근본적으로 자질 부족이다.

첫째, 축구 감독으로서 전술에 대한 이해와 구사가 세계 수준에서 한참 떨어진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 감독은 러시아전과 알제리아전에서 똑같은 선수들을 기용했다. 반면 알제리아는 벨기에전의 선발멤버서 5명이나 대폭 바꾸면서 공격적 축구를 구사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한국의 대응전술은 없었다. 홍 감독은 벨기에전에서 선발진에 일부 변화를 줬지만 후반 역량이 미흡한 선수들로 다시 교체함으로써 그나마 긍정적 흐름에 제동을 걸고 말았다.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 할 감독이 코스타리카와의 8강전 경기 종료를 앞두고 골키퍼를 교체해 승부차기에서 2개를 막아내고 승리하는 바람에 ‘명장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홍명보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원래 축구 두뇌가 뛰어난 것도 없고 국내외 프로팀의 감독으로서 충분한 수련과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니다.

둘째, 홍명보는 축구 감독으로서 고집이 세고 경직돼 있다. 한국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이 골키퍼를 이운재에서 정성룡으로 바꾼 것은 성공이었다. 그러나 16강전 우루과이와의 대결에서는 이운재가 더 나았을 수도 있었다. 홍명보의 용병술은 그만도 못하다. 최근 들어 골키퍼 정성룡은 계속 부진했는데 홍명보 감독은 김승규를 평가전에서 한번 써보고는 그대로 후보로 벤치에 앉혀두었다. 박주영은 소속팀에서 출전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평가전에서 한 골을 넣었다고 계속 기용했다. 선수기용이 즉흥적이고 개인적, 직관적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셋째, 홍명보의 성공신화는 상당 부분 허상이다. 홍명보가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주장이었던 것은 맞다. 또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축구가 동메달을 획득할 때 감독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2002년 터키와의 3-4위전에서 최종 수비수로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터키가 경기시작 후 최단시간 내 골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게 해준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대표팀 감독을 맡아 평가전에서 멕시코와 가나에게 각각 4대0으로 대패한 것 또한 확실하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출전하는 올림픽 축구에서의 동메달은 일본이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이미 획득한 것이다. 물론 런던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누른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축구감독으로서의 능력을 그 성적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홍명보가 물러나야 할 이유는 단순히 무능과 아집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거만하다는 것이다. 홍명보가 그동안 축구 선수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지도자와 관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데는 그의 비교적 준수한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가 상당히 작용했다. 일단 위엄 있어 보이는 겉모습과 함께 한국 축구계를 이끌어가는 양대 산맥의 하나인 고려대 축구부 출신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눈치 빠른 히딩크가 홍명보를 주장으로 기용하고 이후 특별한 경력이 없음에도 코치로 발탁한 뒤안에는 이런 인맥과 관계가 깔려있다.

홍명보는 언론에 대해, 그리고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지극히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벨기에전이 끝난 뒤 그의 발언을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좋은 경험”이었고 “내 거취는 내가 알아서 한다”는 것이었다. 귀국한 후에도 “꼭 실패만 남는 대회가 아니었다”고 강변하고 “선수들이 소속 팀에 돌아가서 많은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허탈한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평소에 스포츠매체와 축구기자들에 대해 일종의 ‘분리·통제’책을 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음에 들고 고분고분한 기자에게는 인터뷰와 정보를 제공하고 비판적 기사를 썼거나 비우호적이라고 여겨지면 철저히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정말 한심한 것은 상당수 스포츠기자들이다. 이전의 다른 대표팀 감독에 대해 온갖 비방과 비난을 일삼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홍명보 감독에 대해 거의 비판적 시선이 없었다. 오히려 보도 논평에서 무조건 옹호하고 칭찬하는 굴종적 자세를 보인 일이 잦았다. 한국 언론은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현상을 가끔 보이는데 이처럼 일종의 ‘성역’으로 대우해주는 대상은 돈과 권력, 권위와 사회적 영향력, 대중적 인기, 학벌과 인맥을 가진 사람들이다. 적어도 축구계에서 홍명보는 인기와 영향력, 기회와 이권을 제공해줄 능력, 끼리끼리 서로 도닥여 주고 부추기는 네트워크의 한 핵심이었던 셈이다.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은 어떤가. 그는 1993년부터 16년간 축구협회장을 역임하고도 모자라 회장직을 심복인 조중연 씨에게 넘겼다가 2013년에는 사촌동생인 정몽규 씨에게 넘김으로써 수렴청정으로 실질적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그는 브라질 월드컵 성적에 대해 “한국 축구의 세계 순위는 57위다”라며 “기대가 커진 것은 그 동안의 좋은 성적에서 기인한 착시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거의 ‘좋은 성적’에서 이렇게 나빠진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열의 부족만 탓한다는 인상을 줬다. 정몽준 씨가 과거 국회 외통위에서 발언을 하면서 반말 짓거리를 하고, 그의 아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민이 미개하다”고 말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몽준 씨는 16년 동안 축구협회장을 지냈고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1994년 축구협회에 41억 원을 출연했다는 언론 기사 외에는 아무런 재정적 기여를 한 기록이 없다. 오히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축구협회 예산으로 비행기 1등석과 최고급 호텔을 이용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서 최근 선거에서는 “2002년에 내가 심판들을 다 매수해서 한국이 4강에 올랐다고들 하는데, 그만 하면 능력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니 그의 윤리의식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재벌 아들로 태어나서 스스로 사업을 한 것도 아니고 평생 정치와 스포츠계를 오락가락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인간존중이나 사람에 대한 존경에 대해 들어본 바가 별로 없는 듯하다. 정몽준 씨의 건방지고 방자한 태도는 그의 공인으로서의 활동 속에서 되풀이해서 나타났다.

홍명보와 정몽준은 개성은 약간 다를지언정 결국 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거만하고 건방질 뿐만 아니라 끼리끼리 인맥을 형성해서 서로 봐주고 끌어주고 감싸준다. 그들에게는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들’만 있을 뿐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가 없고 어떤 일을 잘못했을 때 져야할 책임이라는 것은 안중에 없어 보인다. 홍명보가 겉모습에서 비롯된 대중적 인기에 의존한다면 정몽준은 재벌이라는 돈의 힘과 인맥에 의존하는 차이라 할까.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잘 되고, 큰 소리를 치고 산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한통속이 돼서 잘못이 있으면 덮어주고 책임질 일이 있어도 눈감아 준다. 이런 사람들끼리 끝없이 누리는 ‘의리의 세상’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이제라도 한국의 월드컵 경기를 망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