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 블래터 피파 회장

요새 관피아, 해피아, 교피아 등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관료와 마피아를 합성해서 만든 말이다. 공무원들이 범죄조직 마피아와 같은 집단이기적 심성과 폐쇄적 행태를 보이며 자리와 이권을 독점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관료나 정치인보다 민간부문 특히 기업의 부정부패가 더 심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국민권위원회의 전신인 부패방지위에 따르면 건설·건축부문의 부패가 가장 심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잠시 접어두고, 세계에서 가장 썩은 조직과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분야는 어디일까.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아프리카·남미의 많은 제3세계 정부와 사회가 썩을 대로 썩어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이른바 브릭스(BRICS)국가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른바 선진국 그룹이라는 제1세계에서 가장 추악하고 썩은 분야를 꼽는다면 단연 국제 스포츠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 스포츠계에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와 국제펜싱연맹, 국제역도연맹, 국제레슬링연맹, 세계태권도연맹, 국제체조연맹 등 심심치 않게 추문을 퍼뜨리고 말썽을 부리는 상습용의자 단체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잔챙이에 불과하고, 국제 스포츠계의 진정한 대어는 두 마리 뿐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바로 그들이다. IOC는 1894년 이래 모두 9명의 위원장이 있었는데 우리는 쿠베르탕(프랑스)과 브런디지(미국), 사마란치(스페인) 등 3명만 기억해 두면 족하다. 이들은 각기 20년 이상 재임하면서 국제 스포츠계의 황제로 군림했다. 쿠베르탕은 올림픽운동의 창시자고 브런디지는 아마투어리즘의 옹호자로 유명하다. 사마란치는 올림픽을 비즈니스로 만든 당사자고 2000년 사망 때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FIFA는 1904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8명의 회장이 있어왔는데 월드컵을 창시한 쥘 리메(프랑스), 24년 장기집권의 주앙 아벨란제(브라질), 그리고 2015년 5선 연임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현 회장 제프 블라터(스위스)는 알아둬야 한다. 이들 가운데 ‘FIFA 마피아’라는 악명을 받도록 한 ‘부패의 주축’은 회장 자리를 주고받은 아벨란제와 블라터 2인조다. 아벨란제는 24년간 FIFA를 사조직으로 운영하면서 모든 것을 ‘패밀리 안에서 조용히 처리하는 마피아 방식’을 도입했다. 아벨란제 밑에서 사무총장으로 실무를 맡았던 블라터는 회장이 된 후 독선과 불투명한 회계처리에 대해 비판을 받은 것은 물론 회장선거 관련 금품수수 및 개최지 결정을 둘러싼 뇌물 추문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돼 왔다.

영 <선데이타임스>는 이달 1일 무함마드 빈 함맘 전(前)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이 FIFA 집행위원들에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로비자금으로 500만 달러를 건넨 사실을 폭로하고, 관련 서증을 공개했다. 이 때문에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권 반납과 블라터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블라터는 엉뚱하게 “카타르 월드컵 의혹에는 반FIFA 편견과 인종차별의식이 깔려있다”고 반격했다.

브라질 월드컵 개막 전날 전 영국 축구협회장 데이비드 트리스만 상원의원은 “FIFA는 마피아처럼 행세하고 있다”면서 “지난 수 십 년간 뇌물과 금품, 부패의 온상이 돼왔다”고 공개 비판했다. 그는 이어 “카타르 월드컵 결정에 투표한 집행위원 가운데 절반은 물러나야 한다”면서 “뇌물 의혹의 장본인들이 조사를 면제받고 있어 진전이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어판이 출간된 독일 스포츠 기자 토마스 키스트너의 ‘피파 마피아’(돌베개)는 “월드컵 수입 40억 유로의 지출명세가 밝혀진 적이 없다”면서 “블라터가 회장으로 선출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직전 아프리카 대표들이 묵은 호텔에서 돈봉투가 어지럽게 오갔다”고 밝혔다.

이 책은 또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해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정몽준 당시 축협 회장이 일본을 지지한 아벨란제를 공략하기 위해 그의 사위 테이셰이라에게 현대자동차 브라질 영업권을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또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이탈리아 경기의 모레노 주심은 월드컵 전에 빚이 많아 생활고가 심했는데 월드컵 이후 갑작스레 돈을 펑펑 썼다”면서 심판 매수 의혹을 제기했다.

정몽준 씨에게 오래 전 일에 대해 단지 책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해명하라고 요구하기에는 적절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카타르의 뇌물의혹이 확인돼 개최권을 반납하는 경우 한국이 2022년 월드컵을 열 수 있도록 유치운동에 적극 나서서 기여하는 것도 국제적 명예 손상에 대응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