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새벽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당선된 새누리당 유정복 후보가 지지자들과 당선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14년 지방자치선거는 여야가 서로 승리했다고 나름대로 주장할 만한 결과를 보였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한때 참패의 가능성마저 점쳐졌었다. 그러나 여당은 영남지역의 5개 광역단체장과 제주도 지사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이번 선거의 쟁탈요지였던 경기도와 인천시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나마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다.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일단 수도 서울에서 여유 있게 이겼고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9곳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에 수적 우위를 보인 것은 물론 충청권을 석권하고 강원도를 꿰어 차면서 지역정당의 굴레를 벗고 외연을 확장했다고 말할 근거를 얻었다.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공동대표도 광주에서 거의 무명의 인사를 전략 공천해서 압도적으로 당선시킴으로써 ‘대권의 꿈’을 당분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설사 상대를 눌렀다고 기염을 토한다 해도 실제로는 둘 다 간신히 패배를 모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유권자들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줬다기보다 양쪽 다 불합격 판정을 내린 것으로 볼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여당에게는 엉망인 사회시스템과 정부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묻고 야당에게는 국정감시를 제대로 하고 수준이 되는 후보들을 내놓으라고 경고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결국 승패가 애매하고 엇갈리게 함으로써 여야 모두에게 오만에 빠지지 않고 분발하라고 촉구했다고 할 것이다. 여야 지도자 못지않게 박근혜 대통령은 유권자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각별히 잘 읽어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실망과 아쉬움을 일정 정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인물보다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성향을 보고 투표하는 경우가 많은 교육감선거에서 이런 측면이 여실히 드러났다. 17곳 가운데 13곳에서 진보성향 교육감이 선출된 것은 유권자들이 미래에 관한 한 진보적 이념이 상대적으로 더 미덥다고 여기고 있다는 증좌가 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진보진영은 단일화가 잘 됐는데 보수진영은 분열했다고 이유를 대지만 영남지역까지 진보성향 교육감을 선출한 것은 설명이 잘 안 된다. 보수단체와 주류언론의 ‘종북몰이’에 국민 상당수가 염증을 느끼고 있고, 차기 지자체장 선거는 진보성향 후보를 선호할 수도 있다는 신호다. 현재로는 시도지사의 경우 단순히 이념정치성향보다 후보의 자질과 능력 등 인물을 따진다고 봐야 한다.

야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한명숙 후보와 경기도의 유시민 후보를 내세웠는데 서울시 구청장 25명 가운데 23명이 야당인 반면 시장은 여당의 오세훈 후보에게 내줘야 했다. 한명숙 후보의 소양과 경쟁력이 부족해 보였던 탓이다. 유시민 후보도 겉똑똑이라는 평에다 그의 언동에 반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김문수 후보에게 대패했다. 그때 유 후보에게 예선 탈락했던 김진표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지기는 했지만 여당 후보와 거의 대등한 득표력을 보였다. 반면 새누리당은 경기도와 인천에서 야당의 중량급 후보와 현직 시장에 필적할 만한 후보를 냄으로써 아슬아슬하게나마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원래 지방선거는 집권당의 신임을 묻는 중간평가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직전 선거의 반작용과 유권자의 강자 견제심리 때문에 야당이 상대적으로 나은 성적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새정치연합이 완승을 거두지 못했다. ‘세월호 심판’이라는 구호에만 매달려 미래 비전 제시가 부족했던 탓이 아닌가 싶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야당이 북한에 대해 확실히 선을 그을 때가 왔다는 점이다. 북한이 갖가지 극악한 체제 종말적 증상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인권유린에 관한 한 전 세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에는 잇따른 군사도발에다 핵무기 위협까지 곁들여 도저히 용인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야당이 햇볕정책의 유산을 승계하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제 북한에 대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최소한 강온양면정책을 지향해야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한복 패션쇼는 그만 하고 애초 국민 앞에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 국민행복을 위한 정책을 이행해 가야 한다. 이런 대전환의 시작은 당연히 인사라 할 수 있다. 능력을 내세워 유신헌법을 기초한 자를 중용하거나 정치검사 출신을 ‘국민검사’로 포장한 일부 언론의 추천인지 총리로 발탁하는 등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대탕평 인사를 실천하면 될 일이다. 임기 안에 북한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한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안전시스템의 정착은 관료개혁에서 시작해 법치확립을 거쳐 안전문화로 완성된다.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교통사고로 사망자를 내면 반드시 소득비례 벌금과 함께 6개월 이상 실형을 살도록 해보라. 2012년 기준 교통사고 사망자의 37.6%인 보행자 사망이 급감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