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날개를 펴는 듯한 포핸드 자세

[동영상] 굴비스 프랑스오픈 8강전 하이라이트

경기에서 패했어도 늘 유머를 잃지 않았던 러시아의 마라 사핀이 은퇴했을 때 다들 미소만으로도 팬들을 매료시키는 선수가 떠났다고들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몇년전 그 자리를 라트비아의 에르네스트 굴비스가 메워주었다고 생각하게 했다.

2008년 US오픈에서 앤디 로딕을 상대로  굴비스는 위험이 따르는 아슬아슬한 샷도 칠 줄 알고 다양한 샷을 구사하며 경기를 하며 팬을 사로잡았다.  로딕에게 1세트를 따내고 내리 3세트를 패한 뒤 기자들이 인터뷰룸에 늦게 도착하자, 굴비스는 “패자한테는 아무도 관심이 없군요”하는 말도 툭 던지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존 매캔로, 사핀에 이은 악동의 등장을 알린 셈이다. 

굴비스는 코트에서 자신의 성격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서브를 넣기 전에 볼을 바닥에 튀기기 전에 만지작거리는 아주 특이한 습관이 있다.  굴비스는 준비 자세를 취하고 볼을 눈높이만큼 튀긴 후, 손에 다시 쥐기 전에 토스하는 손등으로 볼을 위로 좀 더 쳐 올린다.
코트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쉬운 샷이 빗나갈 때면 크게 소리를 지른다. 그의 파워 넘치면서 능숙한 플레이와 톡톡 튀는 성격의 표출은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의 광속 서브와 포핸드는 파워 테니스의 새로운 버전처럼 보였다. 2008년에 그는 이 두 가지 샷만으로 윔블던에선 라파엘 나달을 상대로, US오픈에선 앤디 로딕을 상대로 한 세트씩 따냈다. 하지만 굴비스는 2년차 징크스에 심하게 시달렸고 2009년 중반 즈음에는 역대 가장 실망스러운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 시즌의 초반 9개월 동안 출전했던 24개 토너먼트에서 그는 단 한 번도 2회전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유한 젊은이(굴비스의 아버지 에이나르는 사업가로 라트비아 최고의 부자 중 한 명)는 테니스 코트 위만 아니라면 편해 보였다. 윔블던에서 앤디 머레이에게 짧은시간에 3세트를 내줬을때 굴비스는 테니스를 계속해야할 지 말아야 할 지 기로에 설 정도로 최악의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들어 굴비스는  “테니스 코트에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집에 가고 싶을 때도 있어요. 상대 선수와 열심히 싸울 때도 있지만 자기 자신과 싸울 때도 있잖아요”라고 말한 뒤 며칠만에  미국 델라이비치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때 굴비스 곁엔 새코치 에르난 구미가 있었다. 인내심 많은 에르난 구미가 합류한 뒤 스탠드에서 찬찬히 굴비스를 관찰하고 처방을 내린 결과가 우승으로 나왔다. 이후  로마 마스터스 2회전에서 로저 페더러를 상대로 한 세트를 빼앗은 굴비스에 대해 페더러는 "세컨드 서브의 엄청난 속도에 놀랐다"고 말할 정도로 달라졌다.  봄이 끝나갈 무렵, 굴비스는 22승 10패를 기록하며 톱 30위 안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인내심 많은 코치의 힘이 효과를 발휘했다.

에르난 구미가 굴비스에 손을 댄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말이었다. 말하는 태도부터 바꿨다.  굴비스가 가장 자주 쓰던 단어인 ‘패배자(루저)’란 말을 그의 입에서 빼냈다.  사춘기를 막 지나 덩치만 큰 아이의 세상사 투덜거리는 소리와 부정적인 소리를 제거해내기 시작했다. 대신 굴비스는  “그냥 코트에서 즐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것이 이번 프랑스오픈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시합 도중 라켓을 부러뜨리고 소리를 치고,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는 것 조차도 게임과 승부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생애 첫 프랑스오픈 4강. 토마스 베르디흐를 3-0(6-3 6-2 6-4)으로 가볍게 이기고 빅4 대열에 합류했다. 다음 상대는 무시무시한 노박 조코비치. 우승가도에 난공불락을 만났지만 굴비스가 어떻게 롤랑가로스 필립 샤트리에에서 그의 테니스를 즐길 지 기대된다.  그의 나이 26살이고 랭킹은 17위다. 즐기는 선수 굴비스에게 the Coupe des Mousquetaires(삼총사 트로피)가 주어질까. 

▲ 책 수집가인 굴비스의 아버지가 작가 헤밍웨이를 좋아해 헤밍웨이의 이름 ernest를 아들 이름으로 삼았다. 오른쪽이 Ernest Miller Hemingway.

굴비스 2014프랑스오픈 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