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의 세월호 침몰사건에서 승무원 24명 가운데  이준석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갑판장, 조기장(기관장) 등 운항을 맡은 선박직 15명은 전원 구조되고 사무장을 비롯한 안내원, 계약직 등 고객서비스 담당 9명은 모두 사망, 실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천안함 사건 때도 부사관 및 수병 46명이 희생된 데 반해 함장 최원일 중령을 포함한 장교 7명은 전원 생잔했다.

조셉 콘라드의 소설 ‘로드 짐(1900)’의 앞부분에서 메카로 가는 말레이 순례객 수백 명을 태운 증기선 파트나호의 1등 항해사 짐은 홍해에서 거센 풍랑이 닥쳐 물이 들고 배가 기울어지자 승객들을 버려둔 채 선장 등 다른 영국 선원들과 함께 배를 빠져 나간다. 며칠 뒤 그들은 다른 배에 의해 구조돼 항구에 들어가지만 침몰된 줄 알았던 파트나호가 천행으로 지나가던 선박에 예인돼 무사히 입항하는 바람에 영국 선원들의 비겁한 행위가 만천하에 폭로된다.

짐은 재판에 회부되고, 선장 등 다른 선원들이 이래저래 면책된 반면 홀로 항해사 자격증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후 짐은 자신의 나약함과 침몰선의 영웅이 될 기회를 놓친 것에 스스로 절망하고 끝없이 괴로워한다. 이 이야기는 1880년 실제 일어났던 사건에서 따온 것인데 세월호 사건과 닮은 데가 있다.

지도자가 비겁하고 백성이 그렇지 않은 일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왜 지위가 낮은 사람은 자기 책임을 다하는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제 살기에 급급하는 일이 많은 것일까. 나아가 한국 국민은 우수한데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 것일까. 한국군을 두고 “사병은 세계에서도 우수한 수준이고 장교단은 평균 이상인데 장성들은 처진다”는 말이 있다. 꼭 옳은 말이 아니라 해도 한국은 국민이 우수한 반면 지도층은 형편없다는 평에 일리가 있는 듯하다.

해방 직후 이승만 박사가 귀국해 돈암장에 머물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찾아가 ‘미국에 오래 살았는데 미국과 조선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 달라’고 했다. 이박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백성들로 말하자면 조선이 미국보다 뛰어나오. 하나 지도층은 미국이 조선보다 훨씬 앞선 것이 감히 비교가 되지 않을 지경이오.” 내 생각에도 미국의 지도층이 한국 지도층보다 뛰어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미국은 엘리트 충원과정이 한국보다 능력 위주의 merit system에 가깝고 지도층 인사를 배출하는 중산계급도 더 두텁다. 청교도의 도덕적 전통과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통합적 기능, 정교분리를 통한 사회갈등의 조정 등의 긍정적 요소도 경시할 수 없다. 또 이민국가의 특성 때문에 다양한 민족과 계층에서 지도층 후보자를 선발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지도층이 상대적으로 우수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명예의식이 없다. 한국은 기득권층과 지도층이 다소 분리돼 있다. 우리나라에 경제적 부와 사회적 명예를 세습해온 기득권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신분질서는 사실상 붕괴했고 새롭게 신분상승을 쟁취한 개인이 각 부문에 넘쳐났다. 문제는 신지도계층이 과거의 기득권층이 형식적으로나마 갖고 있던 도덕주의와 명예의식을 내재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지도층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많이 부족하다.

둘째, 한국의 지도층은 일반 서민층과 출신이 같고, 따라서 우월한 점이 없다. 미국과 같은 다민족사회는 물론이고 프랑스같은 단일민족 사회도 가문이나 학벌 등을 중심으로 배타적인 엘리트 충원을 한다. 중국의 경우 엘리트 계층과 일반 서민을 비교하면 마치 다른 민족인 것처럼 여겨지고, 일본의 경우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계급과 신분이 온존해 있다. 한국은 지도층과 서민층이 출신 성분이나 계급배경이 거의 차이가 없는 나라다. 때문에 지도층이 딱히 더 우수할 것이 없다.

셋째, 엘리트 충원과정이 왜곡돼 있다. 한국에서 신분상승의 첫 관문인 대학입시는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보다 전 과목을 두루 잘하고 체제순종적인 부류를 선호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보다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사회생활에서도 정의롭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 일을 잘하고 창의적인 제안을 내는 사람보다 상사의 뜻에 잘 따르고 아부를 잘 하는 사람, 인간관계가 좋고 원만한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채용과 승진, 포상과 혜택에서 연고와 사사로운 관계가 많이 작용하고 뇌물과 반대급부 등 부패관행이 고착돼 있다.

위의 세 가지 이유 외에 더 근본적인 까닭이 있다. 우리나라 지도층, 더 넓게는 지식층은 ‘의식의 표절’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송나라와 명나라의 의식을 베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을, 해방 후에는 미국을 베껴왔다. 단순히 선진 문물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표절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지도층은 조선시대의 유교적 도덕주의는 잊어버렸고, 제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일본식 봉건윤리도 내버렸다. 그리고 탐욕을 시장의 울안에서 제도화하는 미국적 자본주의는 받아들였지만 그와 표리관계에 있는 프로테스탄트윤리와 ‘로마인의 의무와 절제라는 미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의식의 표절도 완벽하면 모범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아직은 반쪽의 표절인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