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해외 이민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한국 땅이 좁고 불공정 경쟁사회가 싫어서, 군부독재가 미워서 한국을 벗어나고 싶다는 사람은 한때 차고 넘쳤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나라들의 매력에 이끌리거나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운을 시험해 보겠다는 결의에 가득 찬 젊은이도 흔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민 출국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희망자도 사라지고 있다. 그 까닭은 한국이 그만큼 살기 좋아졌다고 볼 수도 있고, 해외 선진국의 실상을 좀 더 알게 된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가 교통통신의 발달과 함께 지구촌화하면서 굳이 해외로 이민을 가서 정착하기보다 국내외를 오락가락하며 사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이 아마 가장 큰 이유일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까지 밖에서 이민을 오는 곳이었다. 전란과 박해, 기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한반도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주로 중국에서 흘러 들어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월경하는 것을 나라에서 엄벌에 처했고 명나라 해금령의 영향도 있어 우리나라를 들고 나는 이민이 거의 없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는 상당한 인구가 일본과 만주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한민족의 이민 서사시’가 본격화한 것은 구한말에 들어서였다. 여기에는 일본의 침략과 압박에 따른 궁핍화라는 방출 요인(push factor)이 크게 작용했다. 동시에 해외지역이 조선 사람들을 끌어당긴 견인 요인(pull factor)도 없지 않았다. 청나라 말기 국경통제가 느슨해지고 산둥(山東)인들의 만주 이주가 대량으로 이뤄진 것이 배경의 한 측면이었다. 조선인에게는 간도지역이나 러시아령 연해주가 인구가 희박하고 노동력이 부족해 이민의 대가를 제대로 얻을 수 있는 개척지로 부상했다.

한일병합 이후에는 일본인들이 식민지에서의 치부와 신분상승을 노려 한반도로 몰려왔고, 거꾸로 1930년대 이후 식민 본국에서 생활난을 타개하려는 조선인도 늘어났다.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자 일본세력의 옷자락에 껴묻어 만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중에는 일본군을 따라 중국과 동남아에 진출한 경우도 많았지만 대부분 정주 목적의 이민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귀환하는 동포가 한때 물밀 듯 쏟아져 들어왔지만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뚝 끊기고 말았다. 1950~60년대에는 국외 이민자가 전쟁 통의 인연으로 미국이나 유럽, 중립국으로 건너간 경우 등 극소수에 머물렀다. 한국의 악명 높은 ‘고아 수출’도 이때 비롯된 인간의 상품화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들어 미국이 이민법을 개정, 이민 문호를 제한 개방하는 바람에 한국인의 해외 진출이 본궤도에 올랐다. 이후 40여 년 동안 미국으로 간 사람들은 이민비자를 받은 일반인 이외에 미군과 혼인한 국제결혼자, 종교비자를 얻은 목사 가족, 기존 이민자의 친인척 등이 주류였다.

이민 행선지의 대종은 미국이었지만 미국 이민당국이 까다롭게 구는 바람에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가 대체 이민지로 떠올랐다.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도 이민대상지로 부상했지만 한국 사람의 이민지는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대양주의 호주와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가 주종이었다. 외교통상부의 해외이주신고 통계에 따르면 총 이민자 수가 처음 1만 명을 웃돈 1970년부터 1만 명 아래로 다시 내려앉은 2003년 사이의 만 33년 동안 총86만3,355 명의 국민이 한국을 떠났다. 이 숫자는 재외공관 신고 등 누락자가 많아 신뢰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이민 출국의 전체적 추세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이 통계를 보면 해외이주신고가 시작된 1962년부터 2011년까지 이민출국자 총94만여 명 가운데 1위가 미국 70만여 명, 2위 캐나다 10만4천여 명, 3위 남미 5만6천여 명, 4위 유럽 3만3천여 명, 5위 호주 2만여 명, 6위 뉴질랜드 1만6천여 명의 순이었다. 그러나 2011년 호주주재 대사관에 따르면 호주 교민은 임시체류자와 학생을 제외하고 약7만2천여 명이라고 한다. 또 뉴질랜드는 한때 4만 명을 헤아렸던 교민 수가 최근 3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뉴질랜드의 경기침체에 따른 호주로의 이주가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이민통계는 원래 역이민(귀국)과 제3국으로의 재이주, 유학생의 현지 정착 등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크게 믿을 것은 못된다.

어쨌든 1970~90년대의 ‘한국인의 대량 이민시대’에 절대 다수의 이민자는 미국을 선택했고, 상당수는 캐나다를 골랐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를테면 대학 진학의 제3지망 학과와 비슷한 위치였다고 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 미국과 캐나다와는 다른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이들에 따르면 미국은 번잡함과 인종갈등, 범죄 때문에 꺼려지고 캐나다는 2류 이미지와 촌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면 호주와 뉴질랜드는 청정자연과 외딴 곳이라는 지리적 위치에서 비롯된 유토피아 이미지, 높은 생활수준과 문화, 백인 위주의 인종적 단일성 등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을 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호주와 뉴질랜드는 과연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일까? 사실 나는 호주와 뉴질랜드는 언제라도 개인적 여행으로 가볼 수 있었지만 다음 기회로 넘기고는 했다. ‘영국의 짝퉁’이라는 이미지가 마뜩치 않은 데다 이들 나라가 특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뉴질랜드의 자연이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한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미루던 끝에 2013년 11월 하순부터 2014년 1월 중순 사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둘러봤다. 개인적으로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호주와 뉴질랜드가 지구상에서 최고의 ‘가거지(可居地)’라고 부르기에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혹여 내가 이민을 고려한다면 대상 후보국으로 손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대충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할 일이 별로 없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공통점만큼 차이점도 많다. 그러나 영국 기준으로 ‘Down under’라는 관용적 표현이 나타내듯 지구의 반대편, 멀고 외진 나라라는 점은 두 나라가 다를 것이 없다. 아웃백이 아닌 대도시도 일종의 ‘막다른 골목’ 느낌이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 호주인과 뉴질랜드인(키위)들은 앵글로색슨 정체성에 꽁꽁 묶여 다른 문화나 민족들을 지켜보거나 살필 겨를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예컨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대개 자국 제작의 TV프로그램과 영국의 게임쇼, 미국의 수십 년 전 시트콤 정도를 지상파를 통해 시청할 뿐 여타 국가의 방송콘텐츠나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한국의 경우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 그들의 동정을 주시하는 것은 물론 멀리 떨어진 유럽 등의 변화에도 꽤 민감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호주의 정치인들은 호주가 아시아권 국가라면서 한중일 3국과 동남아·서남아 지역과의 연계를 강조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영국에 기댄 문화적 우월의식에서 깨어날 생각이 전연 없는 듯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경제적 사정과 문화적 형편이 다르지만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이민자에게 할 일이 지극히 제한돼 있는 점이 공통이다. 한국 이민자들은 식당과 한국식품점, 이·미용원 등 소자본 자영업이 주류이고 전문직 및 기술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흔히 뉴질랜드에서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가구당 연 7만 달러, 물가가 비싼 호주의 경우 연 15만 달러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웬만한 직업으로는 생계를 이어가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뿐 아니라 설사 벌어먹고 산다 해도 주류사회에 진입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먼 것으로 보였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삶의 여유와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면 삶의 여유를 넘어 생의 의미와 보람,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호주와 뉴질랜드는 그런 면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Non-event’의 연속이라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매슬로우(A. Maslow)의 욕구위계이론을 원용한다면 기초적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 및 안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는 장점이 있을지라도 사회적 욕구를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고, 나아가 자존·존경의 욕구나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환경이라 하겠다.

둘째, 물가가 비싸다. 뉴질랜드의 잡지 “North & South’ 2013년 4월호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영국 수퍼마켓(테스코)에서 구입한 20개 식품 값은 뉴질랜드 수퍼마켓(카운트다운)보다 35%(NZ$ 71)가 저렴했다. 뉴질랜드 주산품인 치즈도 영국이 뉴질랜드보다 38.7%가 쌌다. 팀버랜드 부츠는 뉴질랜드에서 NZ$ 229,99인데 미국 아마존에서는 US$ 89.95(NZ$ 106.79)에 팔렸다. 바나나 1㎏은 뉴질랜드 NZ$2.99, 호주 NZ$4.30, 영국 NZ$1.40이었다. 영화 관람료는 뉴질랜드 NZ$16, 호주 NZ$22, 미국 NZ$10. 휘발유 1ℓ뉴질랜드 NZ$2.10, 호주 NZ$1.80, 미국 NZ$1.20이었다.

세계 주요 국가와 도시의 물가지수는 여러 기관에서 조사,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여행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체감물가는 1위 노르웨이, 2위 호주, 3위 영국이었다. 일본은 영국처럼 교통요금이 특히 비싸지만 음식 값이 싼 것이 많아 전체적으로 물가가 최고 수준은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모두 물가가 높은 편이지만 원유 수입 때문에 1인당 GDP가 특히 높은 노르웨이의 고물가를 능가할 나라는 없다. 러시아 물가가 높다는 통계가 있지만 이는 모스크바의 최고급 호텔 숙박료 등 부분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런던은 한국의 강남에 시골 부자들이 투자하는 것처럼 아랍, 러시아, 아프리카 부호들이 앞다퉈 부동산을 사들이는 바람에 집값과 월세가 뛰어오르고 임금과 서비스 요금 등이 따라 오른 경우다.

호주는 지난 10수년 동안 원자재 호황을 누리면서 임금이 엄청나게 올랐고 물가도 덩달아 올랐다. 법정 최저임금도 20달러를 훨씬 넘어 미국의 2배가 넘는다. 이 때문에 한국의 대학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2만 명 넘게 워킹할러데이 비자를 얻어 호주에 가서 일하고 있는데 대부분 호텔 청소와 농장 잡일 등 막노동이나 식당 설거지 궂은 일에 종사하고 비자 만료후 괜찮은 일자리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소득 차이가 커서 수많은 키위들이 호주에 가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뉴질랜드 생활비가 싼 것 같지만 소득이 더 적기 때문에 생활고가 더 심하다고 한다.

셋째, 후대에라도 바라볼 것이 적다. 해외로 갈 때 이민 1세대는 희생을 하더라도 2세대를 잘 키워 성공을 시키겠다는 포부를 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인만이 아니라 세계인 공통의 꿈이다. 에이미 추아(Amy Chua) 예일 법대 교수의 ‘호랑이 엄마의 군가(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는 이런 정서를 다소 극단적 형태로 표출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호주의 멜버른대학이나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대학 등 명문급 대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학문적으로 후미진 구석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선진국으로만 배우러 간다는 것은 이미 옛날 말이고 최근에는 미래가 밝은 개발도상국에 유학하는 것이 더 유망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런데 학문에 관한 한 호주와 뉴질랜드는 선진그룹에 속한다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전망 밝은 후진국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현재 세계 각국 대학의 글로벌 순위에서 상위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영국이다. 미국 대학들은 당분간 정상을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영국 대학의 경우 오랜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가경제와 대학재정이 질적 수준을 좌우할 것이라고 한다. 대학의 전통이 길지 않은 호주와 뉴질랜드는 경제의 영향이 더 직접적일 것이라는 진단이다.

앞으로 20~30년 안에 영국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 주요 국가의 반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부의 시각이자 전망이다. 호주의 경우 원자재와 자원이 풍부해서 경제적으로는 일정한 위상을 유지하겠지만 문화적으로 선도적 위치를 지킬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뉴질랜드는 경제 규모가 작은 데다 농축산업과 수력발전 외에는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이 별로 없다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지금 현재 호주와 뉴질랜드 상위권 대학의 위상은 큰 손색이 없다. 그러나 현재의 재학생들이 본격 활약할 20~30년 뒤에 이런 수준과 평판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가 없지 않다. 또 북미나 유럽에 가서 호주식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얼마나 고품격 영어로 인정받을 것인가에도 의문의 소지가 있다. 가까운 미래에 호주나 뉴질랜드에 유학을 가기보다는 차라리 한국 국내에서 대학을 다니고 영어를 배우는 편이 값도 싸고 취업에도 유리한 날이 올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자녀 교육을 위해, 또는 영어 숙달을 위해 이민을 간다는 말은 더 이상 성립이 되지 않을 것이다.

뉴질랜드가 세계에서 사회발전이 가장 앞섰다는 조사도 있다. 이달 초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사회발전조사기구(SPI)는 ‘2014년 사회발전지수(Social Progress Index)’를 발표했다. 전 세계 132개국을 대상으로 인간의 기본 욕구와 복지 기반, 기회 제공의 3개 분야에서 54개 항목을 조사해 점수를 매긴 결과 뉴질랜드가 100점 만점에 88.24점을 얻어 당당 1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개인의 권리와 선택의 자유, 고등교육 접근성과 소수민족에 대한 관용과 포용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은 이 조사에서 28위로 나타났고 호주 10위, 독일 12위, 일본 14위, 미국 16위, 중국 90위, 인도 102위를 각각 기록했다.

내가 가서 보고 느낀 뉴질랜드는 분명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였다. 그러나 뉴질랜드가 사회발전 세계1위라는 것은 터무니없고, 앵글로색슨 나라들에 유리한 편견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민주주의 전통이 한국보다 오래됐고 정치적 스펙트럼도 넓다고 할 수 있지만 개인의 권리와 정치적 자유가 한국에 월등 앞섰다고 평가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됐고 선거과정에서 정보기관의 댓글 개입이 있었다 해서 대선 결과가 무효화되거나 정통성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이 민주원칙과 절차에 따라 큰 무리와 부정 없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의 접근성으로 말하자면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수준이고, 대학 학비를 세금으로 충당할 것이냐 등록금으로 메울 것이냐 하는 것은 원칙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뉴질랜드가 소수 마오리족 원주민의 권리 보호에 진전을 이룬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애초에 백인들이 불평등 조약과 압박으로 그들의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분적 회복과 구제가 이뤄진 것일 뿐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최근 탈북자와 결혼이민자 등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고 사회경제적으로도 이들에 대한 특혜 지적이 나올 정도로 우대하고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는 점도 국제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SPI는 앵글로색슨 편견으로 매겨진 점수표라는 인상이 짙다.

지난 1999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씨랜드 참사’가 벌어져 유치원 어린이 등 23명이 졸지에 떼죽음을 당했을 때 한 학부모가 “이 땅이 싫다”며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맏아들 도현(6)군을 잃은 엄마 김순덕 씨는 여자 필드하키 국가대표선수 출신으로 서울올림픽 은메달과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를 땄는데 자신이 받은 체육훈장과 국민훈장을 반납하고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에 나는 깊은 동정심과 함께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뉴질랜드는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좋은 나라인가”하는 것이 궁금하기만 했다.

뉴질랜드가 영국의 선진적 제도를 본받아 안정된 사회를 이루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나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씨랜드 참사 때의 수련원 관리자와 일부 교사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뉴질랜드에서 쉽사리 용인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2013년 충남 태안읍 사설 해병대캠프에서 공주사대부고 5명이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류의 후진국형 사고도 뉴질랜드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교육, 의료, 교통, 통신 등 각종 사회서비스에서 뉴질랜드가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 한국의 문제가 있다면 뉴질랜드에는 뉴질랜드의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한국을 떠나 호주나 뉴질랜드로의 이민을 고려하는 분들에게는 “나 같으면 거기로 여행은 몰라도 살러 가지는 않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