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포츠는 국력’이라고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뿌듯함을 생각하면 이 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국제경기에서의 스포츠 성적은 경제력의 반영일 뿐 아니라 때로는 전조가 되기도 한다.

한때 아시안 게임을 압도적으로 주름잡았던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인 1982년 뉴델리대회에서 중국에 메달카운트 1위를 뺏기더니 다시는 만회를 못했다. 그나마 일본은 86년 한국에 2위를 내준 다음에 94년 히로시마대회에서 금메달 1개 차이로 반짝 2위 자리를 되찾았을 뿐 98년 이후 아시아 3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래 들어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필리핀이 54년 2회와 58년 3회 아시안 게임에서 2위를 차지했던 것은 50년대 당시 필리핀의 국력과 위상을 말해준다.

우리나라가 구미국가에 알려진 것이 한국전쟁 때였다면 국제무대에 본격 데뷔한 것은 아무래도 88년 서울 올림픽이었다. 당시 소련 선수단은 한국 국민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텔레비전에 비친 서울의 발전된 모습에 러시아 국민들이 받은 충격이 91년 12월 소련의 해체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말도 있었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은 경기 성적은 물론 대회 준비와 시민의 열기, 응원의 창의성에서 공동개최국 일본을 눌렀다는 것이 외국 언론의 일치된 평가였다. 이때부터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고 한국인 스스로도 국민적 자부심과 자신감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하계 올림픽에서 1996년 4위 2000년 3위 2004년 2위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더니 2008년 베이징대회에서 대망의 1위에 오른 스포츠 강국이다. 그러나 축구에서만은 부진을 거듭해 2002년 월드컵 본선 진출 이후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1956년 중국의 마오저둥은 인민해방군 축구팀이 유고슬라비아 청소년 대표팀에게 대패한 다음 “이번에 우리가 졌고, 앞으로 12년간 계속 질 수 있지만 13년째에 이기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축구팬으로 알려진 시진핑 부주석은 “월드컵 두 번째 출전과 월드컵 개최, 그리고 월드컵 우승이 세 가지 소원”이라고 말했지만 현명하게도 기한을 설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긴장과 스트레스를 푸는 오락을 넘어 전후방 연관효과가 적잖은 산업의 한 부문이자 많은 팬들이 열광하는 대중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스포츠를 통해 사회적 정체성을 내면화하고 사회적 연대감과 국민적 통일성을 갖게 되는 순기능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비판감각 마비와 허위의식 조장 등 대중 기만의 술책이라는 역기능을 적시한다.
 
더욱이 스포츠의 대중화가 물질주의와 성공지상주의를 만연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지난 81년 군사독재 시절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프로 야구가 출범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의 아편’으로서 정치적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심지어 스포츠가 종교의 기능적 대체물이 돼가고 있으며, 스포츠 스타들이 연예인들과 함께 새로운 유사종교의 사제단이자 사회의 신흥 귀족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이런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체력은 국력”이고 스포츠는 분명 국력의 산물이자 잣대라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스포츠는 국운이라고 본다. 스포츠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흥망성쇠가 달려있을 뿐 아니라 나라의 기풍과 운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운은 ‘나라의 운명’이라는 것이 사전적 의미이나 ‘국가의 기운’이라는 뜻도 있다. 스포츠를 즐기는 나라는 번성하고 스포츠를 업신여기는 국가는 쇠퇴하게 마련이다.

청나라 말기의 개혁가 양계초는 일찍이 ‘천하대란의 시대’에는 개인주의, ‘천하태평의 시대’에는 사해동포주의가 각각 성하지만 그 중간 ‘소강의 시대’에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대두한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 하찮은 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조촐한 평화가 유지되는 소강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역시 우리는 국가의 틀 안에서 생활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스포츠는 개인이나 소집단의 소일거리일 뿐 아니라 국가의 대사이고 기운이라 보는 것이다.
 
과거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올리는 것이 국민적 관심사였던 시절이 지나간 것은 사실이다. 또 엘리트 체육보다 생활체육이 발전해야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면 안 되듯이, 엘리트 체육을 너무 빨리 외면했다가는 일본의 잘못된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아마투어 스포츠와 프로 스포츠가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듯이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상호 균형을 지키면서 수레의 두 바퀴처럼 굴러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포츠에서 경쟁과 즐거움 가운데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