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파한은 세계의 절반(Esfahan nesf-e jahan)’이라는 말이 있다. 16세기 사파비왕조의 아바스대왕이 새 수도로 정한 이스파한의 장려함을 기려서 나온 말인데 페르시아 말로 ‘이스파한 네스페 자한’이란 문구가 반운(半韻)을 이루기 때문에 더욱 인구에 회자됐다. 11세기부터 180년 동안 셀주크 투르크족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스파한의 최고 명소는 단연 ‘이맘 광장(Imam square)’이다.

세계에는 아름다운 광장을 큰 자랑거리로 삼는 도시가 많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시에나의 델 캄포광장(Piazza del Campo)과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광장(Piazza San Marco)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광장은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 플라스(Grand Place)와 모로코 마라케시의 제마 엘 프나광장(Djemma el Fna)이다. 하지만 이스파한의 이맘 광장은 이국적 아름다움과 독특한 매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출한 광장이다.

이맘 스퀘어는 체헬 소툰(마흔 기둥)궁전의 아름다운 정원 곁에 있는 길이 560ｍ 너비 160ｍ 약 2만7,000평 넓이의 광장인데 지금은 한가운데 분수와 넷으로 나뉜 전형적인 골레스탄(장미원) 스타일의 정원이 들어서 있다. 원래 이곳은 옛날 왕족공경들이 말을 달리며 폴로를 즐기던 경기장이었고, 지금도 광장 양 끝에 돌로 만든 골대가 남아 있다. 광장 북쪽 바자르와 인근 기념품점에 가면 낙타 뼈 위에 가는 붓으로 폴로 경기하는 풍경을 그린 세밀화를 팔고 있다. 광장 남쪽에 있는 이슬람 사원 마스제데 샤는 아바스 대왕이 25년이나 걸려 지은 기념비적 건물인데 나는 들어가 보지 않고 다음번을 위해 아껴 두었다. 인도에 두 번 갔었지만 타지마할에는 들르지 않은 것도 다음 기회가 또 있을 것이라는 우스꽝스런 믿음에서였다.

이란의 중부에 있는 야즈드(Yazd)는 마르코 폴로가 지나갔던 사막 도시로, 꼭 가볼만한 곳이다. 야즈드 한가운데 올드타운에는 햇볕에 말린 흙벽돌로 지은 2,000여 채의 19세기 주택들이 남아 있는데 지붕 위의 통풍탑(wind catchers)이 이색적이다. 오아시스도 아닌 사막에 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지하수로 카낫(the qanat) 덕분이다. 이란 전역에 약 5,000곳이 있는 카낫은 이란북부와 중부의 높은 산자락에서 수원을 찾아서 가장 깊게는 지하 100ｍ까지 내려가 한 사람이 기어 다닐 크기의 터널을 판 다음 물을 끌어다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 쓰는 것이다.

역사가 2,000년 이상 된 카낫은 이란 뿐 아니라 중국 신장자치구에서는 볼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카레즈라고 불린다. 투르판의 위그르족들은 수백㎞ 밖 텐샨(天山)산맥의 눈 녹은 물을 카레즈로 끌어다 포도 등 과일 농사를 짓는다. 들판에는 카레즈를 조성하면서 중간 중간 환기용 우물을 통해 흙을 파 올려 쌓아 놓은 무더기들을 볼 수 있다. 한나라 때로부터 비롯된 중국의 카레즈는 대운하,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의 3대 불가사의’ 또는 ‘3대 인공 구조물’로 일컬어진다. 많은 학자들은 중국의 카레즈가 이란으로부터 전해졌다고 보고 있다.

이스파한을 떠나 찾아간 테헤란 북서쪽 카즈빈(Qazvin)이란 도시는 사파비 왕조가 이스파한으로 옮기기 전의 수도였다. 이곳에 간 것은 ‘암살자의 골짜기(Valleys of the Assassins)’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영어의 ‘assassin(암살자)’란 단어는 아랍어의 ‘대마(hashish)‘에서 나온 것으로, 12세기 후반 이슬람 신비주의 교파 이스마일파의 지도자 하산 사바(Hasan-e Sabbah)가 젊은 교도를 끌어 모아 암살 임무를 맡기면서 대마초(하시시)를 피우도록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하산 사바는 ’산상노인(Old Man on the Mountain)’이란 별명으로 불렸는데 알라뭇(Alamut) 골짜기의 해발 2,000ｍ 산꼭대기에 성채를 여러 군데 지어놓고 기화요초를 심은 정원에다 십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몇 달간 지내도록 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대마에 취한 채 아름다운 처녀들의 시중을 받게 한 다음, 알라를 위해 암살을 수행하고 순교자가 되면 천당에 가서 40명의 미녀들을 얻게 된다고 가르쳤다. 알라뭇 암살자들은 암살 대상자의 지근거리까지 침투해 측근으로 수 십 년씩 지내다가 지령을 받은 즉시 암살을 감행하는 일도 있어서, 인근 지역 권력자들에게는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었다.

암살자의 성채는 하산 사바 사후에도 암살 용병 등으로 세력을 떨치다 1256년 이란을 침공한 몽골군에 의해 멸망했다. 이스마일파의 본진인 알라뭇 성을 비롯한 대부분 성채는 몽골군에 항복했지만 끝까지 남은 한 성은 17년간이나 저항을 계속했다고 한다. 내가 카즈빈에 도착한 것은 마침 휴일 아침이어서 대중교통편이 없었다. 알라뭇 성 등정은 다음날로 미루고 먼저 마슐레라는 산중 마을을 다녀왔는데, 이튿날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결국 암살자 성채들을 가지 못해 아쉬웠다.

카스피해 연안 라쉬트라는 도시에서 테헤란까지 가는 길에 ‘람사르(Ramsar)’라는 낯익은 이름의 도시가 보였다. 1971년 습지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이 맺어진 곳이다. 숲이 우거진 카스피해 연안의 해안도로를 따라 그만그만한 도시가 잇따라 들어서 있다. 수도 테헤란과 카스피해 사이의 알보르즈 산맥은 최고봉이 해발 4,850ｍ나 되다보니 카스피해쪽 사면은 비가 잦고 그 반대쪽 사면은 높은 산에 구름이 가로막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비그늘(rain shadow)이 된 것은 당연하다.

테헤란 뿐만 아니라 이란의 웬만큼 큰 도시에서는 코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묘령의 여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매부리코를 깎아서 반듯하게 하는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이다. ‘성형수술의 문화사’라는 책에는 한국과 브라질, 이스라엘이 세계 3대 성형수술대국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문헌에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한국이 성형수술대국이란다. 어느 쪽이 맞든 이란은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나라다. 재미있는 것은 코에 테이프를 붙인 여자 가운데 상당수는 수술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받은 척하기 위해 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가짜 환자라고 한다. 이란에서는 코 수술을 받은 것이 부와 여유의 상징이기 때문에 수술을 안 받았어도 수술 티를 내는 것이 유행이라는 것이다. 이란에는 약 3,000 명의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고, 한해 90,000 명 정도가 코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가격은 1,000 달러부터 최고 4,000 달러까지란다.

테헤란에는 볼 것이 많지만 국립중앙은행의 특별금고 안에 있는 보석박물관은 최고 인기 장소다. 여기에는 세계 최대의 원석 다이아몬드 ‘다르야 누르(Darya-ye Nur)’와 저 유명한 ‘공작 왕좌(Peacock Throne)’이 있기 때문이다. ‘Sea of Light’이라는 뜻의 다르야 누르는 182캐럿의 핑크 다이아몬드 원석이다. 참고로 세계 최대의 가공 다이아몬드 ‘쿠 누르(Kuh-e Nur)’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시대에 영국인들이 훔쳐갔다. 보석박물관 입구에 전시되고 있는 공작왕좌는 1798년 이란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이전인 1739년 나데르 샤가 인도의 무굴제국 수도 델리에서 약탈한 ‘공작왕좌’는 이란으로 옮기는 도중 병사들에 의해 해체돼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 런던탑에 소장된 쿠 누르 다이아몬드는 이때 공작왕좌와 함께 무굴제국에서 빼앗은 것이다.

이란을 여행한 관광객들이 집에 돌아갈 때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은 페르시아 양탄자다. 이란의 각 지방과 민족마다 독특한 디자인과 전통 문양이 있는데, 이란 전역에서 약 500만 명 이상이 카펫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융단을 영어로 ‘carpet’ 또는 ‘rug’라고 하는데 보통 길이 2ｍ를 기준으로 이보다 큰 것을 카펫, 작은 것을 러그라 부른다. 따라서 무슬림들이 지니고 다니다가 기도할 때 까는 ‘prayer mat’는 러그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카펫은 수천, 수만 개의 매듭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두터운 보풀(pile)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면 매듭과 보풀 없이 민짜로 직조한 얇은 매트는 킬림(kilim)이라 한다.

카펫은 양털과 염소·낙타털 등으로 짜는데 요즘에는 실크로 만든 것이 유행이다. 값은 물론 비단이 양털보다 보통 10배 정도 비싼데, 흔히 실크 카펫은 벽에 장식용으로 걸고 양털 카펫은 바닥에 까는 용도로 쓴다. 이란 곳곳에 카펫 상점이 있지만 테헤란과 시라즈, 이스파한 바자르에는 수많은 카페트 전문점이 모여 있어 더 유용하다. 3,000개 이상의 카펫가게가 밀집한 테헤란 바자르의 가격이 시세를 정하고, 가장 싼 편이라고 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테헤란 바자르를 천천히 둘러보면 제일 좋고, 시간도 없고 아주 고급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면 입구에 진치고 있는 전문 삐끼의 안내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하나 유명한 이란의 특산품은 사프란(saffron)이다. 가장 귀한 향료의 일종인 사프란은 이란 동쪽의 호라산 지방이 주산지이고,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의 카시미르, 그리스에서도 일부 재배하는 크로커스 꽃의 암술(자예 雌蕊)을 말한다. 1㎏의 사프란을 얻으려면 약 15만~20만 송이의 크로커스 꽃을 따야하기 때문에 값이 이처럼 비싼 것이다. 5명의 일꾼이 하루 종일 8시간을 따야 이 정도의 양을 채취할 수 있는데, 국제 시세로 1㎏에 10,000 달러 정도 한다. 각종 파스타와 스페인의 빠에야 요리에 들어가고 밥 위에 장식용으로 많이 쓰이는 사프란은 소승불교 스님들의 가사를 노랗게 물들이는 염료로도 쓰인다. 크로커스 꽃은 보라색이지만 꽃술인 사프란은 빨간색이고, 절구에 넣고 찧어서 따뜻한 물에 불린 다음 요리에 넣으면 선명한 황색(saffron yellow)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