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김청의 선수를 키워온 아버지 김진국님의 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테니스 선수를 하나 키우기 얼마나 어려운 지 간략하게 느낌을 적으셨습니다. 혹시 지금 자녀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는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사전 허락 없이 올립니다. 안타깝게도 이달말 김청의선수 홈페이지를 닫는다고 합니다.

길고 긴 여정이 패배의 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왔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라는 김진국님의 글 대목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홈페이지

아래는 김진국 님의 글.

관략하옵고......

최근 몇몇 분들께서 질문을 하셨습니다만, 답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딱히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과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을 정리해서 말씀드릴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25년 전 뜻을 세워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긴 세월이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기쁨, 희망, 포기, 도전, 절망 등 수많은 단어들이 저와 함께 했습니다. 2004년...... 중학교 2학년인 청의를 데리고 중국, 인도까지 가서 예선도 뛰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을 때의 씁쓸함, 그로부터 몇 개월 후 파키스탄으로 날아가 14살 때 ATP 포인트를 획득했을 때의 기쁨......

그 시절만 해도 국내에는 퓨처스 대회가 몇 개 없었고, 지금처럼 주니어에게 WC도 주어지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프로대회를 경험하려면 외국을 나가야 했고 그런 상황에서 18세에 해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참가한 대회가 22개 국가, 80여개가 넘었으니 그 고생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40시간이 걸려 아프리카에 간 적도 있고, 터키에서 이란까지 48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타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현실적으로 가장 큰 장애물이 병역 문제였습니다. 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않으면 선수 생활 내내 부담이 될 것을 염려해 고등학교 3학년인 나이에 해군에 입대시켰고, 대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 나이, 그러니까 정확히 20년 1개월이 되는 나이에 병역의 의무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20세에 군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만으로도 청의 앞길에 큰 걸림돌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팀에 입단함으로써 경제적인 문제도 부담을 덜었기 때문에 군 입대 전보다는 훨씬 좋은 여건에서 꿈을 향해 전진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에서 제대한 이후 지난 3년 여 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왼손 사용과 테니스 외적인 문제 등으로.......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했다면 문제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실업팀에 소속되다 보니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새로운 도전으로 시작한 왼손 사용도 시도와 후퇴를 반복했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이러한 시도는 조성진님의 말씀처럼 때로는 조롱거리로 때로는 화제거리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도 청의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는 어떤 분야에서든 그것이 확실한 성과를 거둘 때까지는 비난과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참고 견디면서 결국에는 저의 신념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리라 믿었습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미국 청년이 그 때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상한 방법으로 높이뛰기 금메달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수만 명의 관중이 이 신기한 높이뛰기 장면을 경이로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관중들이 보아 왔던 높이뛰기 방법은 정면도와 복면도였습니다. 정면도란 두 발로 바를 넘는 것이고, 복면도는 배로 바를 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등으로 넘었습니다. 즉 얼굴과 배는 하늘을 보도록 하면서 등을 이용해서 바를 넘는 것인데 오늘날은 모든 선수들이 이런 방법으로 바를 넘으므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모든 선수들이 정면도나 복면도로 넘는데 오직 한 선수만이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방법으로 바를 넘는데 그 선수가 결승전까지 올라와서 금메달을 놓고 겨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의 올림픽 최고기록은 4년 전 동경올림픽에서 수립된 218cm였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224cm에 도전하고 있었으며 결국 224cm를 넘어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리차드 더글러스 포스베리였습니다.

포스베리의 배면도는 새로운 기술로 올림픽을 제패하고 신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기업과 스포츠분야에서 혁신사례로 자주 강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포스베리는 정면도나 복면도로는 2m도 못 넘었다고 합니다.

기업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스포츠 분야에서도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방법이나 기술로 세계를 제패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방법이나 기술은 모두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이나 발상, 그리고 모험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로서는 청의가 비록 어려운 여건과 불리한 환경에 있더라도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모험정신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기를 기대했고, 어느 분야의 정상에 서는 것이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를 바랐습니다.

포스베리가 정면도나 복면도로는 2m도 못 넘었지만, 배면도로 224cm를 넘었듯이 기존의 스타일로는 100위나 50위 밖에 갈 수 없는 재능을 가졌더라도 양손을 다 사용함으로써 윔블던을 제패하는 선수가 되는 길을 찾아가길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꿈에 도전하는 열정과 신념이 달랐고, 모든 불리한 여건과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무기로 선택한 왼손 사용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랐으며, 테니스 외적인 일에 있어서도 생각의 차이가 컸습니다.

그로 인해 군에서 제대하고 3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왼손 사용의 경우 올 초 청의 스스로 왼손으로 하겠다는 글까지 올리며 시도했습니다만 올 4월 상주, 안동 오픈을 기점으로 투 백으로 회귀하고 말았습니다.

연습은 왼손을 하고 경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특히 박빙이 예상되는 중요한 경기에서는 투 백만을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언제까지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을 계속할 바엔 왼손 훈련을 중단하고 투 백 훈련을 제대로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저의 뜻을 접기로 했으며, 그 때(안동 오픈이 끝나고 한국 퓨처스가 시작되기 직전)부터 왼손을 훈련하는 시간에 투 백 훈련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약 2개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열린 8개의 퓨처스 대회에 출전하면서 투 백을 어느 정도 안정화시켰습니다. 투 백은 예전에 잘하던 샷이라 조금만 더 실전 감각을 익히면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꿈은 접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에는 좌고우면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앞으로도 왼손을 경기에서 사용할 결단을 기대할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특히 테니스 외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데도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을 깬 도전의식과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열정만이 감동을 주는 경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그 꿈을 접어야 하는데 대한 안타까움과 억울함과 회한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인생을 살면서 또 자식을 키우면서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그저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우리 가족 또한 최선의 뒷바라지를 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고자 합니다.

길고 긴 여정이 패배의 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왔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긴 세월 동안 성원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용서를 구할 따름입니다.

이 홈페이지는 이 달 말 닫겠습니다.

2013년 8월 1일

김진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