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한국사를 대입과 연계시키는 방침이 12일 확정됐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사를 수능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은 추가 여론수렴을 거쳐 오는 21일 결정하기로 했다. 당초 ‘한국사 수능필수 지정’이 이날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한국사의 암기과목화, 다른 사회과 과목과의 형평성, 사교육비 증가 등에 대한 우려 등이 제기됨에 따라 결정이 유보됐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교육부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학연금재단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합의했다. 당정협의 이후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한국사를 대입에 어떻게든 반영한다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국민 관심이 깊은 중요 문제라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겠다는 여당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애초 한국사를 대입에 연계시키는 방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17일 고교생 대부분이 6·25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교육현장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이어 7월10일에는 “수능으로 (한국사가) 딱 들어가면 끝나는 일”이라고 한 데서 비롯됐다. 한 전교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역사교육 강화가 사교육을 부추기고 교육현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박 대통령 발언 이후 역사교육 반대 주장의 모든 논거가 무력해졌다”고 말한 것을 <서울신문>이 전했다.
나는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하는 논란 자체가 표현 용법에 대한 오해와 의미의 혼란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는 의견을 이미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사를 수능과목으로 집어넣겠다는 작금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젊은 세대에 대한 사고가 편벽돼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역사인식이 1970년대 유신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

사람은 나이 스무살 무렵 가졌던 생각을 나이가 든 이후에도, 설사 외부 환경 때문에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하더라도, 일종의 억압된 형태로라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2년 이른바 ‘10월유신’이라는 반민주 친위쿠데타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지금 혹시 부분적으로라도 가졌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과거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지른 과잉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피해자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은 있어도 부친의 독재정치의 기본노선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부정하거나 반성을 내보인 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1968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됐다. 일본 메이지 덴노의 ‘교육칙어’와 조선총독부가 1937년 제정한 ‘황국국민서사’와의 유사성에 대한 지적이 뒤따랐다. 1969년에는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이 이뤄졌다. 개헌세력의 명분은 ‘중단 없는 전진’ 즉 경제개발이었다.

1970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북한의 천리마운동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과 함께 1930년대 만주국 ‘농촌진흥운동’을 본뜬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줄을 이었다. 아베 신조 현 일본 수상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수상이 만주국 관료로서 농촌진흥운동 계획을 입안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거듭 언급됐다.
1972년 3월24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총력안보를 위한 한국 교육자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적 있는 교육’을 주창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주체적인 민족사관의 바탕 위에 국적 없는 교육을 배격하고 젊은 세대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안보관을 배양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그해 10월 이른바 ‘유신’이라는 이름의 헌정중단사태가 일어났다. 5·16이라는 1차 쿠데타에 이어 박정희가 저지른 2차 쿠데타였다. 10월유신의 명분은 ‘국가안보와 안정’이었다.
이상과 같은 시퀀스를 보면 얼마나 일련의 조치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가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됐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국적 있는 교육’과 ‘올바른 역사관’은 기실 곧이어 닥칠 쿠데타의 예고편이자 사전 포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1972년 5월11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문교부는 국사교육 강화를 위한 시책을 발표했다. 대학입학 예비고사에 국사를 독립 과목으로 추가하여 30점을 배정하며, 14개 국사 관계학회를 통합하여 한국학센터(현재의 한국학중앙연구원)를 설치하고, 국사 연구비를 대폭 증액하며, 초중등 학교에서도 국사를 독립 교과로 하며, 국사교육 강화를 위하여 1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발족시킨다는 것이었다.

국사교육 강화책에 따라 문교부 자문기구로서 설치된 국사교육 강화위원회는 7월5일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독립된 교과로 국사과목을 신설하고, 대학에 교양 필수과목으로 국사교과를 설정한다는 등의 국사 교육과정 구조개편안을 마련, 문교부에 건의했다. 대학의 국사교과 이수학점을 3∼4학점으로 하고, 고등학교에서는 6단위 필수, 중학교에서는 2(2학기), 3(1학기) 학년에 각각 실시하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서는 1, 2, 3학년에 사회과 연간 시간의 4분의 1 정도를 국사내용을 가르쳐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기르고, 4학년에서는 사회과 연간 시간수의 3분의 1 정도를 가르치며, 6학년 1학기에 체계적인 국사교육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국사교육위원회는 이와 함께 국사교과의 신설은 찬성하지만 교재의 획일화, 특히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민족사적 교육의 강화보다는 엉뚱한 부작용을 초래하며, 역행적인 결과를 자초할 것이라고 반대한다고 밝혔으나 이 의견은 문교당국에 의하여 묵살됐다고 한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의 주체적 역사를 젊은 세대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국민의 애국심과 긍지를 위해 제한된 범위 안에서 주관적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거스르거나 역사의 날조와 지나친 왜곡은 어떤 경우에라도 있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세계평화와 선린우호, 상호존중의 정신 등은 역사교육의 기본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새삼 국사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적 있는 교육’을 받은 세대의 역사관은 어땠는지 우리는 그 결과를 대강 알고 있다. 1970년대 유신교육을 받은 1980년대 학번들은 그들이 받은 획일적 국사교육을 부정하고 반발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개탄했던 ‘국적 없는 교육’을 받았던 그 이전 세대는 오늘날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국사 교육 강화’는 한낱 도로에 지나지 않고 심하게 말하면 ‘헛소리’에 그칠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이야기가 되풀이 될까? 박근혜 대통령이 ‘10월유신’과 같은 헌정쿠데타를 꿈꾸는 것일까. 아니라면 ‘유신 공주‘라는 일부의 비난성 별명처럼 유신시대의 ‘질서정연’함을 못 잊는 것일까. 앞으로의 쿠데타는 시대착오적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논외의 이야기일 뿐이고, ’유신의 추억‘도 부활을 바랄 리 없다. 유신의 끝장은 오직 대통령 암살과 체제붕괴, 그리고 혹독한 개인적 시련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순한 사고의 고착, 또는 습관적 행동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답을 모른다. 문제는 ‘유신 전사’ 김기춘의 재기용처럼 시대를 몰각한 이상 행태가 반복되면 지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국민들이 언젠가는 집권자의 사고패턴을 읽고 고개를 아예 돌려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사의 대입 연계와 같이 황당무계한 생각은 접는 것이 좋다.

우리는 서울대에서 국사학 중흥이라는 명분으로 역사학과가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등 세 개 과로 나눠진 촌스럽고 우스꽝스런 행태를 봐왔다. 그리고 심심하면 국사교육 강화라는 주장이 왜 나오는지 대충 알고 있다. 겉으로는 거창스런 명분을 내걸지만 결국은 ‘업권’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 사회의 현재를 망치고 미래를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 가운데서도 교과과목의 업권은 심각한 문제의 하나다.

국사교육을 강화하려면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역사과목을 강화하되 동양사의 맥락과 세계사와의 균형, 지리·문화·도덕 등 연관과목들과의 융화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등학교에서는 현행대로 국사 등 역사과목은 선택과목으로 하는 것이 옳다. 굳이 고교생에게 역사를 가르치려면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세계사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 및 그 이후에 해외여행과 연수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마주치고 있는데 일방적인 국사교육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며 상대방을 바라보는 ‘대화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까닭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