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먹고살기 위해 튀는 행동을 하던 것이 요새는 튀기 위해서 심한 말 하는 일이 부쩍 잦아진 듯하다. 성추행 의혹의 장본인 윤창중 씨가 과거 그런 사람이었고, “윤창중이 ‘미시 유에스에이’의 친노종북 세력에게 당한 듯 하다”며 “(친노종북 세력이) 교묘하고 계획적으로 거짓선동을 한판 벌였다”고 주장한 변희재 씨가 또한 그렇다.

변씨는 또 “미시 유에스에이에 ‘윤창중이 강간했다’고 떠들고 다닌 애도 주미 대사관 인턴”이라며 “주미 대사관은 친노종북 선동 사이트 미시 유에스에이 출신들만 인턴으로 뽑아 청와대에 붙여주나요”라고 적었다고 한다.

어떻게 친노종북과 Missy USA가 연결되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가지만 그런 주장의 입증 책임은 변씨에게 있는 것이니 걱정은 말기로 한다. 더욱 심한 말은 Missy USA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려진 글에서 나왔다. <뉴스1>이라는 매체에서 12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 회원은 “변희재가 Missy USA는 ‘친노종북 세력’이라서 계획적으로 박대통령의 방미를 음해하려고 이번 성추행 사건을 이슈화했다고 하네요”라며 “우리 회원님들 대부분이 전라도 사람이고 빨갱이가 되었네요. 우리 단합해 변희재를 명예 훼손으로 미국 법원에 고소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라고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이에 다른 회원들은 “저놈 한 번 호되게 당해야 합니다. 전 서울토박이에 충남이 본적임. 데모 한번 안 해본 날 종북으로 몰다니”, “전 강원도 출신. 변희재 이 썩을…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초딩식 언어구사로 먹고 사는 해충 같은 인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종북인가요. 한심한…” 등의 댓글을 남겼다고 한다.

어기 인용된 소수의 Missy USA 회원들에 따르면 ‘친노종북은 곧 전라도 출신이고 빨갱이’인 셈이고 ‘서울과 충남 또는 강원도 출신은 친노도 아니고 종북이나 빨갱이일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물론 ’변씨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화가 나서 반론을 펴기 위해 한 말‘이라고 선의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함의가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 사회에는 어떤 연유에서든 시비가 붙었을 때 멱살잡이나 몸싸움 이전에 말씨름을 벌이면서 곧 “어디에다 대고 반말이냐”는 ‘반말 트집’으로 이어지고 종내는 “너 나이가 몇 살이냐”는 ‘나이 타령’으로 귀결되는 낯익은 풍경이 종종 되풀이된다. 비슷한 패턴으로 좌우이념과 관련된 논쟁이 벌어지면 어떤 자들은 결론으로 ‘전라도’와 ‘빨갱이’를 한 문장 안에 이어놓아서 그들이 한 동아리임을 암시, 아니 명시하는 일이 가끔 있다. 마치 이 세상에서 매우 나쁜 두 가지가 서로 결부돼 있으니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고 들이대는 품새다.

보수 논객이나 그들이 말하는 ‘우익 의병장(?)’ 출신이 어떤 범죄나 악행을 저질렀을 때 곧 친노종북의 음모 때문이라는 발상은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한 수준의 사고다. 변씨의 말을 뜯어보면 Missy USA가 꽃뱀을 풀어서 윤창중씨가 성추행을 하도록 유혹했다는 주장은 그나마 아닌 듯하고, 사실을 부풀려 까발리는 ‘거짓 선동’을 저질렀다고 고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변희재씨가 뭐라고 생각하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흉악한 생각을 품은 사람이 많고, 혹시 나는 어땠는가 한 번 돌이켜 볼만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변씨가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한 것도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요설과 선동으로 출세하겠다면 자극적인 말을 불사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임에 틀림없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 어차피 ‘변방의 북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변씨의 주장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매체들이다. <조선>은 균형을 잡는 모양새를 위해 총기가 좀 떨어지는 조국씨의 트위터 논평을 별도 기사로 따라붙였지만 변씨의 논평을 대서특필한 속내는 우익성향의 독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던 듯하다. <조선>으로서는 몇몇 극우 성향의 온라인 매체들이 고정 지지층을 잠식하는 데다 최근에는 ‘일베’라는 극단적 사이트가 ‘독한 말’을 매일 내뱉고 있으니 ‘집토끼’ 단속에 신경이 쓰일 만도 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터무니없는 주장일수록 잘 먹히는 음모론의 세계에서는 윤창중 씨의 추행이 모두 시끄럽게 떠들어댄 자들의 탓이라는 논리가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kiling the messenger’라고, 옛날에 왕이 나쁜 소식을 가져온 사자를 죽인다는 말처럼 엉뚱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일은 너무나 많다. 이번 사건에서 성추행 피해자인 인턴과 한 방을 썼던 주미 문화원 여직원이 미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뒤늦게 보도됐는데 이런 whistle blower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는 이런 의인과는 정 반대의 행동을 했다. 먼저 변희재 씨의 온당치 못한 트위터 논평을 수백만 명에게 전파했을 뿐 아니라 조국씨 논평을 들러리 세우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보도 행태는 꼭 이념적 이유라기보다 상업적 이유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TV조선>이 12일 일요일 하루 내내 윤창중 파문으로 도배질한 것을 보면 값싸게 시청률을 올리려는 의도와 수법을 알 수 있다.

가장 악질적인 행태는 ‘미시 USA 회원들 발끈…’이라는 기사의 보도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다른 관련 기사와는 달리 자사 기자에게 작성시키지 않고 <뉴스1>이라는 신생 뉴스통신사의 기사를 전재했다. 그것도 인턴기자의 기사였다. 같은 제재를 다룬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전라도‘ ’빨갱이‘라는 표현을 전혀 안 보이고 단지 ”난 서울 출생인데 고소합시다“라는 다소 뜬금없는 말만 전후 맥락 없이 인용돼 있다.

<연합뉴스>의 기자와 데스크는 개념 없는 발언의 민감성을 알았기에 문제가 될 만한 표현은 삭제하고 커뮤니티 게시판 글에 대해 기사를 작성, 보도했다. <조선> 데스크는 발언의 민감성만이 아니라 기사의 폭발성을 너무 잘 이해했기 때문에 자사 기자에게 기사를 씌우지 않고 무명의 <뉴스1> 인턴기자의 기사를 따다 실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조선일보>의 극단적이고 저열한 보도행태는 최근 편집국장이 바뀐 뒤 더 심해진 듯하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빨갱이 사냥’을 부르짖으면 조만간 말의 끝장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패권세력이 천 수백만의 사람들을 극악한 세력으로 몰아세울 때 그런 암시와 비난, 공격이 그냥 넘겨질 수 있겠으며 그 반격이 말과 논리로만 이뤄지리란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 날 혹시라도 맹동분자들에 의해 폭력과 위해가 가해지면 <조선일보>는 ‘호소무처’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경고와 부탁은 늘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이념 공세와 패권을 수호하려는 지역주의를 한데 엮어 선동하는 것은 단순한 불의를 넘어 사람들을 두 쪽으로 가르고 증오를 부추겨 결국은 나라를 파탄시키는 하는 무서운 불장난이다. 자중하고 또 자중해야 한다.

전대미문의 나라망신을 시킨 윤창중과 ‘우리 시대의 매카시’라 불릴 만한 변희재, 그리고 이 모든 추행과 억설 뿐 아니라 한 두 사람의 실언을 비수로 만들어 증폭·전파하는 <조선일보>, 그들 가운데 누가 가장 패덕한 자라고 꾸짖어 마땅할까.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