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아(왼쪽)와 아사다 마오

지난주 새로 나온 책을 선전하는 기사 하나가 신문과 방송 여러 군데를 탔다. “왜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를 이길 수 없는지 아세요? 얼굴에 다 나와 있어요,” 17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버드와이저 가든에서 열린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가 우승하고, 오랜 라이벌 아사다 마오가 3위에 그친 것은 다 얼굴 형태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학과 교수는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는 자신의 책을 바탕으로 경기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얼음 위에서 등과 다리 근육을 많이 쓰는 피겨스케이팅은 ‘북방형 얼굴’에 맞는 스포츠이고, 김연아는 두상, 이마, 눈, 눈썹, 광대뼈, 턱의 모습이 모두 북방계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아사다 마오는 광대뼈도 덜 나오고 두상도 김연아보다 남방형에 가까운 얼굴이라는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얼굴은 크게 셋, 북방형과 남방형, 그리고 중간형으로 나뉜다. 북방형은 타원형 얼굴에 흐린 눈썹, 작은 눈과 긴 코를 갖고 있고 결단력과 돌파력을 지녔으며 활달하고 급한 성격이다. 남방형은 각진 얼굴에 진한 눈썹, 큰 눈과 짧은 코를 지니고 있고 관찰력과 분석력이 뛰어나며 침착하고 치밀한 성격이다. 중간형은 북방과 남방이 반씩 섞인 것이다.

최 교수는 “북방형은 빙하기에도 사냥을 했던 사람들이라 등과 다리 근육, 또 이를 지배하는 뇌의 운동영역이 함께 발달했다”며 “두정부(頭頂部)가 김연아는 조금 솟아있고 아사다는 납작한데, 열매 따던 남방계의 후예인 아사다가 김연아보다 잘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가나자와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얼굴 정보처리를 전공해 한국 경찰에서 쓰는 몽타주 작성기법을 개선 고안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최교수의 TV인터뷰를 본 딸내미가 이메일을 보냈다. “이런 사람이 교수 맞나요?”라면서 “아예 나치의 골상학을 주장하지 그래요”라고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나로서는 얼굴에 북방계 특징과 남방계 특징이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고, 직관적으로 그런 분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뭐 그렇게까지 강하게 지적할 거야 있나”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문제는 북방형-남방형 특징이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특정한 얼굴을 하면 어떤 운동을 잘 하고, 다른 얼굴은 특정 스포츠를 잘 못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위험한 사고다. 터무니없다는 것은 얼굴 연구가 진정한 과학적 자료와 근거가 거의 없는 심령학 류의 ‘유사과학’이고, 위험하다는 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른 무리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편견을 과학의 탈을 쓰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수영이나 겨울스포츠에 흑인이 적고 미 NBA에 흑인선수가 압도적인 것은 사회지리경제적 이유지 인종차이가 아니라는 연구는 이미 나와 있다.

먼저,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왜 이겼는지 잠깐 생각해보자. 1990년생 동갑인 연아와 마오는 태어난 달도 9월로 같다. 2004년 주니어 무대에 나온 이래 둘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마주쳤고 끝없이 경쟁해왔다. 처음에는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를 앞서는 듯 했으나 2006년3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가 우승한 다음부터는 엎치락덮치락을 거듭했다. 2007년 일본 TV에 나란히 출연해 한 얘기를 보면 둘은 생년생월이 같을 뿐 아니라 키도 160㎝로 같았다.

그런데 그 뒤 김연아는 2㎝가 더 자랐고, 스케이트 실력도 그만큼 더 아사다를 능가했다. 피겨스케이팅의 꽃은 여자 싱글이고 이 부문은 원래 페기 플레밍, 자네트 린, 카트리나 비트 등 미국과 유럽 선수들의 독무대였다. 1992년 이토 미도리가 알베르빌올림픽 은메달을 따면서 일본은 피겨스케이팅과 사랑에 빠졌다. 2006년 토리노에서 아라카와 시즈카가 예상 밖의 올림픽 챔피언이 됐을 때 일본은 열광했지만 역대 피겨선수 가운데 일본 국민이 가장 아낀 것은 아사다 마오였고, 지금도 그렇다.

아사다 마오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지만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을 뿐이었다. 안도 미키도 세계선수권을 두 번 차지했는데 아사다 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사생활과 잦은 부상, 부적절한 발언 등으로 밉상으로 비친 안도와 달리 아사다는 귀엽고 깜직한 얼굴만이 아니라 천진난만 행동거지와 친근한 이미지, 트리플악셀 성공을 위한 노력 등 일본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할 만한 이유가 많았다.

김연아가 아사다를 누른 것은 전에 열악한 시설과 지원 등을 견디고 좋은 성적을 내자 전지훈련과 맞춤장비 등 외부의 투자가 이뤄진 다음부터였다. 또 아사다가 ‘유리심장’으로 불리는 데 반해 김연아는 ‘강심장’으로 유명하다. 외국 언론들은 김연아에 대한 한국국민의 사랑과 성원이 최고 성적을 내라는 기대와 압력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그가 늠름하고 침착하게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놀라고는 했다. 마지막으로 아사다의 점프기술 못지않게 김연아의 체력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표현력이 탁월하다는 데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없다.

김연아가 아사다를 누른 것은 개인적 자질과 노력, 투자와 지원 덕분이었지 북방형 얼굴을 가져서가 아니다. 최 교수가 그런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역대 챔피온을 비롯한 피겨선수들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다음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 내용으로 신중하게 소논문을 쓸 일이었다. 인종의 차이와 특징을 구분하는 인류학적 연구를 넘어 인종간 우열을 가리고 누가 더 바람직한가를 논하는 순간 인종주의가 성립하는 것이고, 민족(국수)주의나 지역주의도 똑같은 경로를 밟는다. 얼굴 생김새로 사람의 재능을 판별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외모주의(lookism)일 수도 있다.

한·중·일 3국을 비교해 “조선 사람은 활을 잘 쏘고 일본 사람은 칼을 잘 쓰며 중국 사람은 창에 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좋다. “전라도에 시인이 많고, 경상도에는 소설가가 많다”라고 말하는 것도 진실 여부를 떠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사석에서 개인적 관찰로 말하거나 공석에서 비교문화론으로 개진할 내용이지 과학이라고 내세우며 책을 쓸 일은 아니다. 연구실적과 인세 몇 푼, 사회적 반응을 바라고 떠들기에는 자칫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