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니스 에이스 권순우가 세계 7위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확인했다.
권순우(당진시청,세계 62위)는 2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ATP 500 두바이듀티프리챔피언십(총상금 294만 9665달러) 남자단식 2회전에서 세계 7위 안드레이 루블레프(러시아)에 6-4 0-6 3-6으로 아깝게 역전패했다. 경기시간은 1시간 44분.

올시즌 7번 연속 출전한 투어 대회 2회전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1세트 상대 첫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자신의 게임을 확실하게 지켜 한세트를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2월 12일 같은 선수를 상대로 3-6 3-6으로 패한 경기와는 달리 권순우는 확실하게 기선을 잡는데 성공했다. 상대는 권순우의 스트로크에 눌릴 때 마다 라켓을 두드리며 감정을 표출했다.

특히 권순우는 스트로크 랠리전에서 빠른 스트로크를 무기로 세계 7위를 압도한 순간이 속출했고 상대는 이에 당황했다. 1세트를 획득하면서 조심스레 권순우 승리가 점쳐졌으나 2세트 들어 반격에 나선 루블레프가 스트로크 스피드를 높이며 권순우의 실수를 이끌어냈다. 권순우는 좀처럼 랠리에서 밀리지 않다가 네트 플레이 찬스에서 실수를 하며 상대에게 틈을 보였다.  네트 대시하는 찬스가 많은 것을 점수로 연결시키지 못한 권순우는 베이스라인에 있는 상대에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했다.  경기가 끝나도록 줄기찬 랠리, 네트 위를 살짝 살짝 넘는 직선과 대각선 빨래줄 타구에 경기장에선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와 두 선수가 높은 레벨의 테니스를 구사했음을 보였다. 

권순우는 이번 대회 1회전에서 일리야 이바쉬카(벨라루스)를 가볍게 제압하며 지난해와 확연히 달라진 실력을 보였다.  2회전 성적을 낸 권순우는 약 5천만원과 45점의 랭킹포인트를 추가했다.

서의호 기술위원은 "역시 세계 7위의 벽은 높았다. 첫세트를 6-4로 이기며 승리의 기대감을 높였으나 2세트 들어 결정적으로 발리 실수가 많았다"며 "네트에 8번 들어가 7번 실수하는 네트 실수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고 보았다. 이어 서 위원은 "견고한 스트토크를 구사하는 루블레프를 이기기에는 스트로크 대결도 쉽지 않았다. 첫서브 확률도 떨어지기 시작해 승리를 하지 못했다"고 아쉬운 평가를 내렸다. 다만 수확이라면 첫서브가 네트에 걸지 않고 길게 폴트 되는건 큰 수확이라고 보았다.  7번 1회전 승리하고 2회전서 패햐는 행진이 중단 되려면 네트 실수를 줄여야 하는 것이 권순우의 과제로 남았다.

권순우가 이날 상대한 루블레프는 최근 7주 동안 상당한 성적을 올렸다. 호주오픈 3회전에서 마린 칠리치에게 4세트 끝에 패한 뒤 로테르담에서 열린 타이틀 방어전에서 준결승에 진출했고, 지난주 마르세유대회 열린 ATP대회에서  9번째 투어우승을 달성했다. 두바이에선 2020년 데뷔 무대에서 8강에 올랐고 2021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권순우를 이기고 8강에 오른 루블레프는 미국의 매킨지 맥도날드와 4강 진출을 가린다. 맥도날드는 2018년 서울챌린저 우승을 해 우리나라 테니스인들에게 낯이 익은 이름이다. 그의 현재 랭킹은 61위에 있다.  

권순우는 톱 50 상대 시즌 세번째 승리를 노렸지만 근접한 실력만 보였다.

몽펠리에 250-로테르담 500-카타르 도하 250-아랍에미리트 두바이 500대회 일정을 소화한 권순우는 잠시 귀국해 3월 4일부터 5일 이틀간 서울 올림픽공원 실내코트에서 열리는 데이비스컵 오스트리아전에 출전할 예정이다.  국내 팬들에게 모처럼만에 확 달라진 모습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투어에서 2회전 돌파가 어려운 이유 

첫째, 2회전에서 늘 시드를 만난다. 

50위권 랭킹에서 투어 대회를 신청한 권순우는 32드로 규모의 ATP 250 대회 본선에 시드에 가까운 출전권을 갖고 자동출전하고 ATP 500대회는 본선 막차를 타게 된다. 참가선수 규모가 큰 ATP 1000대회는 본선에 자동 출전하지만 시드를 만날 공산이 크다. 따라서 250급대회나 500급 대회는 1회전부터 예선통과자나 와일드카드를 만나면 확실하게 1승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50위대 랭킹의 선수를 만나면 1회전부터 쉽지 않은 경기가 된다. 2회전은 확실하게 시드를 만난다.

코로나시기에 챌린저 대회 개최가 줄어들어 투어 50위내 선수들은 투어대회에 부지런히 출전해 상금을 확보한다.  경쟁이 치열해졌기에 실력이 앞서가지 않으면 그날 컨디션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드들도 상금으로만 투어 생활을 영위하는 선수가 많아 250급이든 500급이든 출전할 수 있는 대회는 무조건 출전한다.

둘째, 아시아선수들의 설자리가 대폭 줄어들었다.

아시아에서 대회가 열리지 않고 유럽과 중동에 대회가 몰리면서 이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유럽선수들과 일부 미국선수들이 득세를 한다.  아시아 선수 가운데 투어 선수로 이름을 내는 선수가 일본의 타로 다니엘, 니시오카 그리고 우리나라의 권순우 정도다. 대만 등 아시아 국가 선수들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투어에서 종적을 감췄다.  메경기 유럽 선수들을  만나고 이를 넘어서야 8강에 오르고 4강, 결승까지 간다. 요행수나 아시아 어드빈티지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셋째, 권순우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세계에 들어갔다.

권순우의 포핸드 스트로크 위력과 백핸드의 안정성은 톱 20위권에 들 정도로 경기한 선수들이 인정한다. 빠른 템포의 스트로크에 힘겨워하고 있다. 최근들어 서브에이스도 두자리수 가깝게 나오고 중요할때 에이스로 경기를 매듭짓는 장점을 장착하고 있다 . 그럼에도 루블레프같은 시드를 만나면 포핸드 슬라이스나 로브는 안통하고 드롭샷은 시도조차 하기 힘들다. 강하고 정확한 공격 이외에는 답이 별로 없다. 호즈오픈 2회전 샤포발로프와의 경기뒤 인터뷰에서 결정적인 샷 선택 실수로 승리를 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만큼 실수가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 ATP 세계라는 것이다.  두바이 2회전 루블레프 경기에서도 2세트 권순우의 게임을 어렵게 브레이크한 루블레프가 상상이상의 큰 소리를 낸 것은 권순우가 탄탄해졌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를 이기기 위해서는 한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대회 상금 규모가 줄어들고 개최되는 대회수도 줄어들어 선수들 사이에서 승리=생존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권순우가 2회전 벽을 뚫기 쉽지 않은 이유다. 

권순우는 투어 본선 출전이 소원이던 시기를 통과하고 투어에 자동 출전하고, 투어 본선 1승을 기대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 1회전 승리는 디폴트로 하고 2회전 시드 격파의 단계로까지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