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워츠먼은 대부분의 공이 사정권에 들어왔다고 했다

 
테니스는 흔히 키 큰 선수가 유리하다고 하는 골리앗 스포츠에 속한다. 그랜드슬램 대회장에서 마주치는 디에고 슈워츠먼은 다른 골리앗에 비하면 다윗과 같은 존재다. 코트에 서면 상대 선수에 비해 머리하나 차이가 날 정도다. 심지어 최장신의 선수와 경기하는 때는 그의 움직임에 감탄을 하게 된다.

170cm인 디에고 슈워츠먼은 남자 테니스에서 최단신 선수중 한명이다. 참고로 벨기에의 올리버 로커스가 167cm로 남자 최단신 투어 선수다.

하지만 슈워츠먼은 최근 로마대회 8강에서 잔뜩 충전하고 클레이 대회에 나온 라파엘 나달을 이겼다. 프랑스오픈에서도 5연승을 달리고 있다.

현대 남자 프로 테니스에서 작은 선수가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한 것은 2004년 프랑스오픈 챔피언 가스통가우디오(180cm)이후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테니스가 점점 더 큰 키의 선수들이 성적을 내면서 180cm이하 남자 두 명만이 그랜드슬램 결승에 진출하는 결과를 냈다.

여태 그랜드슬램 준결승에 진출한 적이 없는 슈워츠먼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유럽의 클레이 코트에서 단축된 시즌 동안 지난 10경기 중 9경기에서 승리했다. 특히 올해 로마 이탈리아 오픈 결승전에서 세계 1위인 조코비치에게 패배하기 전에 지난 15년 동안 게임에서 가장보기 드문 활약인 나달에게 승리했다. 그것도 붉은 진흙 코트에서. 파리에서 그는 6-0 또는 6-1로 20세트 중 5세트를 이길 정도로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자신을 완전체로 드러냈다.

슈워츠먼의 부모는 그가 키에도 불구하고 테니스에서 탁월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일찌감치 알아챘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국적의 또 다른 작은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165cm)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슈워츠먼의 별명은 엘 페케 (El Peque)인데 스페인어로 꼬마라는 뜻이다.

작은 키에도 다리에 모터를 단 듯 잘 뛰는 슈워츠먼은 초가을 쌀쌀한 파리 날씨에 더욱 힘을 냈다.

프랑스오픈은 보통 5월 말과 6월 초에 열리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초가을 시간대로 옮겼다 .

추운 날씨와 차가운 온도는 테니스 볼의 바운스와 비행에 중요한 영향을 끼쳐 덜 활기차게 움직였다.

토너먼트 주최측이 올해 공식구를 바볼랏에서 윌슨으로 바꿔 선수들 사이에선 지난해보다 새 볼을 더 무겁게 느끼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코트에서 볼 스피드로 승부하는 선수들에게는 강력한 화살을 제거한 채 사냥을 하도록 내버려뒀다. 그래서 실수가 적고 상대에게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는 철볍 수비수 슈워츠먼에게 유리하게 코트 흐름이 되었다. 이러한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누리는 선수가 바로 슈워츠먼이 되었다.

18번 그랜드슬램 챔피언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빅 히터, 강서버에게는 힘든 대회가 될 것"이라며 "몸이 빠르고 잘 뛰어 다니며 공을 잡을 수 있는 선수에게 절대 유리하다'고 말해 나달의 우승이 확실시됨을 암시했다.

볼이 죽은 상태나 매한가지인 조건은 슈워츠먼에게도 축복이 됐다. 왜냐하면 스트라이크 존에서 거의 튀어 나가지 않고 샷을 티업하기위한 시간적 여유를 갖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가 강서버인 경우는 더더욱 리턴하기 좋은 바운스와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슈워츠먼은 상대 세컨드 서브 공략이 주효했다. 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로렌조 소네고는 세컨드 서브에서 단 9점(26%)을 얻어 슈워츠먼의 반격에 맥을 못췄다. 이는 8강전 도미니크 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강서브와 호쾌하게 휘두르는 원핸드 백핸드일지라도 슈워츠먼 앞에서는 큰 수박 크기의 느린 볼로 세팅되었다. 슈워츠먼은 자유자재로 라켓을 휘둘러 볼을 처리하기만 하면 됐다. 슈워츠먼의 스트라이크 존에 볼은 알맞게 튀어오르고 알맞은 속도로 다가와 그는 사랑하는 여인 터치하듯 부드럽게 볼을 다루기만 하면 됐다.

슈워츠먼은 그동안 투어에서 8백만 달러 이상을 획득했지만, 톱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3개의 ATP 투어 타이틀을 보유하고 그의 순위는 지난 4년 동안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테니스의 떠오르는 엘리트들이 매년 키가 커지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그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슈워츠먼은 “내 상한선이 어디까지 인지, 결승까지 올라갈 지 모르겠다"며 “이번 대회는 정말 좋다. 해마다 더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결국 파리의 습하고 추운 날씨와 무거운 볼, 그리고 물기 먹은 앙투카가 그에게 우승까지도 바라보게 했다. 작은 거인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