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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테니스대회에 안동웅부라는 글자가 붙었을까
박원식 기자  |  editor@tennispeo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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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20  10: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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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민속박물관에 소장중인 고려 공민왕 필적의 현판

 

   
 

경북 안동에서 초등학교테니스대회를 한 지 13년이나 됐다. 대회 타이틀 스폰서는 안동웅부.  테니스계에선 이대회를 웅부배라고 부른다. 

안동웅부(安東雄府)라는 말은 지금으로부터 680여년전인 1361년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에 피난 온 고려 공민왕이 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안동을 대도호부로 승격시키면서 내린 현판이다. 웅부라는 말은 웅장하게 큰 고을이라는 말이다.  

1361년(공민왕 2년)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이 안동으로 피신을 하게 되자,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1365) 역시 안동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풍천의 송야천에 이르러 다리가 없어 노국대장공주가 건너지 못하자, 안동의 부녀자들이 엎드려 등다리를 만들어 건너가게 해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공민왕은 안동 백성들의 충심에 감동하여 ‘안동웅부(安東雄府)’라는 현판을 써서 안동 백성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웅부(雄府)’는 웅장하게 큰 고을이란 뜻으로, 현재 원판은 안동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사본은 안동시청 현관에 걸려있다.

1361년 12월 15일 안동에 도착한 공민왕은 근 한 달에 이르는 남행 기간 동안 피폐한 민심과 겨울이라는 열악한 기후 조건 탓에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안동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랐다. 안동의 관민은 2월 신축일 공민왕 일행이 안동을 떠날 때까지 약 70여 일 동안 정성을 다해 공민왕 일행을 받들었다.

안동은 공민왕의 방문으로 고려의 임시 수도로서의 역할과 함께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고 안동웅부 현판글씨 등이 지금도 안동의 역사적 상징으로 남게 됐다.

한반도 남동쪽에 있는 안동은 한때 27만명까지 거주했으나 현재 17만여명 인구가 있다. 면적은 서울의 2.5배인 1520제곱킬로미터로 대한민국에서 행정구역 면적이 가장 넓은 시다. 학교가 많고 서점이 많은 도시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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