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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진보 가치와 함께 걸어온 미국테니스 역사138년 전통 US오픈의 본산, USTA
글 오룡(코멘터리 편집주간) 사진 USTA  |  roh@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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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5  01: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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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아서애시 스타디움 야간 경기 모습

환호와 이변의 연속이었던 US오픈이 막을 내렸다. 이로써 올해 4대 그랜드슬램 대회가 모두 마무리됐다. 다른 메이저 대회도 그렇지만 US오픈은 특히 개최국의 테니스 역사와 역량이 결집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주최기관과 경기장부터 미국 테니스 전통이 확연하다.

US오픈은 미국테니스협회(USTA)가 주최한다. USTA는 1세기를 훌쩍 넘긴 1881년 설립됐다. 대중 상업스포츠 제국인 미국에서 드물게 오랜 연륜이다. US오픈은 USTA와 연원을 같이한다. 1881년 8월 로드 아일랜드 주 뉴포트 잔디코트에서 열린 남자 단·복식 대회를 효시로 친다. 당시 대회명은 ‘US오픈 챔피언십’이었다.

   
▲ 1890년 뉴포트에서 열린 초기 US오픈 경기 모습

테니스 대회의 시조인 윔블던이 1877년 창시된 뒤 불과 4년만에 신대륙에서 공식 대회가 열린 것이다. 테니스를 미국에 처음 들여온 사람은 메리 아웃터브리지(Mary Outerbridge, 1852~86)로 기록돼 있다. 북대서양 영국령 버뮤다 주둔 영국군 장교의 딸인 그는 그곳에서 군인·가족들과 테니스를 즐기다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장비와 룰을 들여왔다.

버뮤다에 이렇게 일찍이 테니스가 들어온 것도 연유가 있다. 현대 테니스의 기틀을 세운 월터 클로프튼 윙필드 소령의 부하들이 버뮤다 주둔부대로 배속되면서 테니스를 가져와 즐겼던 덕분이다. 아웃터브리지 일가는 1872년 버뮤다를 떠나 미국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정착했다.

아웃터브리지는 그곳 크리켓·야구 경기장에 테니스 잔디구장을 만들어 가족들과 게임을 하며 클럽으로 발전시켰다. 현재 맨해튼을 오가는 페리 터미널 자리가 당시 경기장과 클럽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1880년 동호인 대회를 연 기록도 남아 있다.

미국 테니스 도입 역사는 묻혀 있다가 1981년 발굴됐다. US오픈 100주년을 맞아 뉴포트에 설립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아웃터브리지가 미국에 테니스를 도입한 인물로 공인, 헌액된 것.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간과된 역사 프로젝트’의 하나로 아웃터브리지 스토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USTA는 이렇게 대서양을 건너온 테니스가 뉴 잉글랜드 지방 상류층에 확산되면서 뉴욕에서 결성됐다. 원래 이름은 ‘미국 내셔널 론 테니스 협회(USNLTA)’였다. 초기엔 윔블던처럼 잔디코트에서 경기했다. 협회 이름에서 ‘론’이 빠진 것은 1975년이다. USTA는 현재 17개 지부, 7000개 클럽, 70만 개인회원을 거느린 미국테니스의 본가다.

묻혀있던 미국 테니스 도입 유래

US오픈은 1978년 잔디, 클레이코트를 떠나 하드코트에 정착했다. 그 경기장이 바로 미국 테니스의 심장이자 아이콘 ‘USTA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USTA Billie Jean King National Tennis Center)’다. 18만8000㎡ 터에 22개 실외 하드코트, 2만2500석 센터코트를 갖춘 테니스장이다.

경기장이 들어선 뉴욕 플러싱 메도스 지역 코로나 공원은 미국역사상 유서 깊은 곳이다. 센터코트 인근에 있는 지구본 모양의 조형물 유니스피어(Unisphere)가 그 흔적이다. 43m 높이의 이 랜드마크는 1964~65년 이곳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상징물이다. 박람회는 미국 자본주의 문명의 전성기를 선포한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쇼’였다.

앞서 1939년 이곳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또한 NBC방송이 세계 최초 텔레비전 전파로 개막식 장면을 송출한 기념비적 행사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인이 애호하는 소설 부동의 1위 <위대한 개츠비>의 무대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사이 1920년대 유례없는 경제성장, 금주령, 재즈 열풍 속 혼돈과 환락의 시대상이 담긴 곳이다.

이렇듯 미국문명의 기억이 축적된 코로나 공원은 오늘날 테니스의 메카이자 뉴욕 메츠 홈구장 시티 필드, 사이언스센터, 박물관, 극장, 동물원 등이 들어선 대규모 공원이 됐다. 특히 테니스센터는 2006년 US오픈 때 ‘빌리 진 킹’ 이름을 붙인 브랜드네임을 얻어 인지도를 부쩍 높였다.

빌리 진 킹(75)이 누구인가. 단·복식을 포함해 통산 그랜드슬램 타이틀만 39회 차지한 전설 중 전설이다. 1971년 윔블던 우승자 출신 55세 남자선수 바비 릭스와 1억 달러 상금이 걸린 성 대결 경기를 펼쳐 3대0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는 이번 US오픈에도 세레나 윌리엄스 경기를 참관하러 경기장에 모습을 보였다.

킹이 테니스인의 롤모델이 된 것은 경기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양성평등과 사회적 편견 타파를 위해 헌신한 사회운동가였다. 킹은 스스로 ‘빗장을 푸는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에겐 최초 타이틀이 많다. 여성 최초로 상금 수입 10만 달러를 넘겼고, 첫 동성애자 이혼소송을 했으며, 여성선수 최초로 자유의 훈장을 받았다.

US오픈 여자선수 우승상금이 남자보다 적은 것에 강력히 항의해 1973년부터 상금액수를 같게 만들기도 했다. 킹을 둘러싼 또 하나의 뜨거운 이슈는 동성애자 권리 문제다. 그는 12년 간 결혼생활을 유지한 뒤 1987년 이혼했다. 그 사이 출산을 거부해 낙태시술을 했고, 결혼한 지 3년 뒤 뒤늦게 레즈비언 정체성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USTA는 1997년 준공한 세계 최대 센터코트에 또 한 명의 레전드 이름을 붙였다. 새 센터코트를 아서 애시 스타디움(Arthur Ashe Stadium)이라 명명한 것. 애시(1943~1993)는 인종차별 철폐 등 사회운동에 활발히 나섰던 흑인 테니스 스타다.

그는 윔블던, US오픈, 호주오픈 등 3개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땄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해당 대회에서 우승한 유일한 흑인 남자선수로 남아있다. 애시는 심장수술 때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 수혈로 에이즈에 걸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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