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다는 것이 누가 당선될 것인가는 고사하고 등록일 직전까지 누가 후보인지 확정되지 않았을 정도로 접전이 펼쳐져서라면, 지루하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압도적 우세를 보이지 않은 채 단일화를 전제한 변칙적 3자 구도가 상당 기간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세대, 지역 및 개인경험 등의 이유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변심이 없는 고정표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부동표 또는 유동표로 남아있는 층에게 문제는 딱히 밀어줄 후보가 마땅치 않다는 것 아닐까 싶다. 지난번 17대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의 초기 지지자들마저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바람에 이명박 후보가 손쉽게 승리를 거머쥔 것과 달리 안철수 후보의 등장과 함께 ‘박근혜 대세론’에 제동이 걸리더니 이후 혼전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은 ‘박근혜냐, 아니냐’의 양자선택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박근혜-문재인’의 맞대결 같지만 기실은 ‘박근혜 지지냐, 거부냐’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온갖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의 다수가 박 후보에게 국민의 신임을 거의 잃은 이명박 대통령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볼 것인지, 아니면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을 넘어서 문재인 후보에게 한 표를 던져줄 것인지에 따라 최종 결과가 나올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강약점과 장단점이 무엇인지 다시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먼저 장점을 보자면, 박 후보와 문 후보 두 사람 모두 인품이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설사 어떤 미점이 있다하더라도 인품이 그 가운데 하나일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좀 복합적인 평가가 뒤따르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인품이랄 것이 없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공과를 떠나 인품에 관한 한 평가조차 시각에 따라 크게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딸 박근혜는 독하다는 느낌이 훨씬 덜하고 노 대통령의 후계자 문재인은 교활한 구석이 별로 안 보인다. 게다가 박 후보는 자신의 말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왔고, 문 후보는 노 대통령 자살 직후 냉정과 침착을 유지하는 절제를 보여줬다.
박 후보에게는 특히 영호남간의 갈등을 풀고 지역주의를 줄이는 데 누구보다 적임이라는 기대와 북한 및 중국에 대해 새로운 관계 설정에 적격이라는 평가가 있다. TK와 호남의 대연정은 아니더라도 ‘인사탕평’만 실행해도 지역대립을 많이 줄일 수 있고, 미 닉슨 대통령의 ‘중공’ 방문처럼 북방외교로 치고 나가기에는 보수 우익이 오히려 부담이 없고 북한, 중국의 현 지도부와 ‘태자당’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문 후보의 경우 우리 시대의 요구라 할 수 있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에 관해 가장 진취적이고, 국민이 김대중 및 노무현 정권에 이어 개혁정권에 삼 세번째 제대로 바꿔볼 기회를 준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의 단점은 무엇일까. 박 후보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측근과 새누리당의 기득권세력이 가장 큰 부담이다.
박 후보는 식견이 모자랄 것이라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고비마다 상당한 판단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이른바 친박세력의 ‘폭력서클’ 분위기는 접어두고 새누리당 지도부와 선대위의 면면들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하회탈처럼 거짓 웃는 얼굴의 ‘환관’과 IMF위기 때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했던 공직 부적격자, 폭력배를 빼닮은 남자와 동물을 연상시키는 엽기녀의 재벌껍데기 커플, 배신과 악랄의 아이콘이 된 ‘친이’계 잔당과 전두환 정권에서 검사로 출발한 주제에 남을 부패분자로 모는 가짜 소신파 등을 보노라면 거의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더욱이 정수장학회 문제를 깨끗이 정리 못하고 김종인씨의 경제민주화 정책안을 뿌리친 것은 선거를 좌우할 중도층을 크게 실망시킨 처사로 직접 후보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후보는 스스로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은 것이 “가장 후회스런 일”이라고 했듯이, 대통령 일가의 비리와 부정을 미리 막지 못했고 결국 노 대통령이 자살에 이르도록 한 것은 대통령이 되는 데 결격사유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국내 문제와 달리 국제적 식견이 모자란 듯 보이는 것이 아쉽다. FTA나 제주 해군기지처럼 참여정부에서 추진했던 일은 소신과 일관성을 지켰어야 했는데 일부 좌파 맹동주의에 밀려 입장을 뒤집은 것은 과연 정권을 맡겨도 되느냐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제18대 대통령은 할 일이 많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과 협력을 통해 경쟁하는 가운데 한국은 가장 미묘하고 민감한 곳에 서있다. 한미동맹의 자산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려면 눈치 보는 ‘줄타기 외교’가 아니라 긍정적 ‘균형자(balancer)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또 한국이 국제사회의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입하려면 앞으로 10년 내에 북한과 ‘전쟁 없는 실질적 통일’을 이뤄야 한다. 소비시장 및 생산기지 확대라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인구구조상 문제의 돌파구로서 북한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이 경제권력을 넘어 정치사회적 권력을 점유하는 일을 막고, 사회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도록 고용과 복지, 주거, 교육, 의료 등 ‘소셜 디자인’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앞으로 5년 동안 두 가지 과제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밝은 앞날은 기약하기 어렵다.
